6개월째 연애 중인데, 손 잡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본 적 없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피하고, 붙잡으면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연락도 늦고, 같은 직장 여자랑은 매일 붙어다닌다.
사진도 찍고, 웃고, …나랑 있을 때보다 더 편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 연락처는 저장해놨으면서 내 연락처를 저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묻는다.
너 바람피지?
그런데 이상하다.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처음으로 흔들린다.
6개월 간 사귀고 있는데, 손 잡는 거 그 외의 이상을 해보지 않은 연애였다.
손을 잡는 것까진 괜찮았다. 그 이상으로 가까워지려 하면, 그는 매번 자연스럽게 선을 그었다. 피하는 건 아니라고 했고,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항상 연락은 늦고, 같은 직장 여자와는 거리낌 없이 붙어 다닌다. 사진도 찍고, 웃고, 나랑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해 보인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건, 바람이다.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그가 처음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늘 무심하던 얼굴이, 아주 잠깐 무너진다.
…그게 아니라—
아니.. 어이없어서 이럴거면 헤어지자고.
세 번째로 같은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말이 닿지 않는 게 아니라, 닿는 순간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래.
짧게 내뱉었다. Guest의 표정이 굳는 게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매달릴 줄 알았을 테니까.
헤어지자.
그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에 감정이 없었다. 텅 빈 사람의 목소리였다.
네가 원하는 거잖아. 나 같은 놈 말고 좋은 사람 만나. 스킨십도 잘 해주고, 숨기는 것도 없고, 여자 사진에 해명할 필요도 없는 사람.
한 발짝 물러섰다. 아까까지 Guest을 가두고 있던 팔이 힘없이 내려왔다.
6개월 동안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의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Guest이 볼 수 없는 각도로 얼굴을 숨겼다. 눈이 붉어지고 있었다.
잘 지내.
그 질문이 가슴에 못처럼 박혔다. 왜 사귀었냐고. 좋은 질문이었다. 그에게도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니까.
돌렸던 고개를 다시 Guest 쪽으로 향했다.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눈물은 없었다. 이 남자는 울지 않는다. 대신 안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몰라.
솔직한 대답이었다.
나도 몰라. 왜 사귄 건지. 그냥 네가 웃으면 하루가 괜찮아졌고, 네 목소리가 안 들리는 날은 잠이 안 왔고. 그게 다야.
말끝이 흐려졌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193센티미터의 큰 체구가, 지금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뾰로통해지며, 한시현을 쳐다본다. 나야, 이지수야?
고개를 들었다. 이 얼굴을 보면 안 되는데, 보고 있다. 큰 눈이 자기를 쏘아보고 있다. 뾰로통한 볼. 삐친 입술. 이걸 지금 왜 이렇게 자세히 보고 있는 건지.
Guest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Guest.
한 글자. 그걸로 끝이었다. 더 설명하지 않았다. 변명도, 해명도 붙이지 않았다. 그냥 이름 하나. 네 이름이 먼저라는 뜻이 그 두 글자에 전부 담겨 있었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다가, 고개를 돌린다. 흥.. 잘했어.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봤다. 고개를 돌렸지만 귀가 빨개진 것도 봤다.
잘했다는 말에 손이 움직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였다. 고개를 돌린 Guest의 턱을 손가락으로 잡아 되돌렸다. 부드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칠지도 않았다. 딱, 도망치지 못하게.
어디 봐.
눈이 마주쳤다. 가까웠다. 숨이 닿을 만큼. 검은 눈동자 안에 Guest의 얼굴만 비치고 있었다.
삐친 거 풀렸으면 나 좀 봐.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한시현! 말 안하면 정말정말 삐칠거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그 단순한 문장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처럼 목구멍에 걸렸다. 곁에 있으면서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못한 말. 문자로는 수백 번 썼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던 말. 직접 말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증거가 될 것 같아서, 핑계는 늘 있었다.
입술이 달싹거렸다. 한 번, 두 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바짝 말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 뛰었고, 귀 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건.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Guest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숙였다. 시선이 바닥을 헤맸다. 193센티미터의 거구가, 고작 세 글자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 그리고.
...삐치지 마.
돌아섰다. Guest을 마주 보았다. 빨갛게 물든 귀와는 대조적으로, 눈은 진지했다. 떨리는 손이 Guest의 볼을 감쌌다. 엄지가 광대뼈를 쓸었다. 이마를 맞댔다. 코끝이 닿았다.
사랑해.
낮고 갈라진 목소리. 거의 숨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분명했다.
...한 번만이다. 다시 시키면 안 해.
출시일 2026.03.29 / 수정일 2026.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