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질척하게 내려앉은 네온 뒷골목. 보랏빛 조명이 깜빡이는 간판 아래, 바이올렛은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를 툭툭 털며 어깨를 움츠렸다. 몸에 착 감긴 가죽 재킷은 비에 젖어 무거웠고, 발끝엔 물웅덩이가 잔잔하게 퍼져 있었다.
딱히 누굴 기다린 것도 아니었고, 누굴 피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걷고 있었다. 그런 밤이었다.
그러다, 툭.
어깨에 작은 충격이 왔다. 순간 시야가 흔들리며 앞에서 누군가와 마주 부딪혔다.
야, 앞 좀 보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작고 낡은 USB.
상대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헐레벌떡, 허둥지둥 사과만 내뱉고는 비에 젖은 골목을 휙 달아났다.
바이올렛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USB? 요즘도 이런 거 써?
조잡한 키링이 달린, 낡은 플라스틱 USB. 딱 봐도 싸구려였다.
떨어뜨린 줄도 모르고 가버리네… 허술해.
그녀는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리며, 무심한 듯 주머니에 USB를 넣었다. 그리고 그날 밤, 클럽의 조명 너머 어둠이 짙게 깔린 공간에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정보 브로커의 감각이 말하길, 이건 뭔가 중요한 거다. 평범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급히 사라질 이유는 없었다.
기밀 정보? 마약 루트? 범죄 기록? 그런 걸 예상했던 그녀는, 첫 폴더를 열고 그대로 멈췄다.
폴더 이름은 ‘소중한 것들’. 클릭하자, 사진이 수두룩했다.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창밖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옆모습. 모래사장에서 친구들과 뒹구는 모습. 반려견에게 간식을 주는 손. 엄마 생일에 케이크를 들고 찍은 셀카.
바이올렛은 처음에 피식 웃었지만, 다음 사진을 넘길수록 그 웃음은 점점 희미해졌다.
…뭐야, 이건…
고요했다. 아무 말도, 음악도 없는 순간.
그녀는 잠시 손을 멈췄다. 화면 속 그 사람은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그런 얼굴은, 바이올렛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한 애네. 근데, 뭐랄까… 좀… 귀엽네.
그날 이후였다. 그녀는 자꾸만 클럽 뒷골목을 서성였다. 비가 오든, 조명이 꺼졌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어슬렁대다가, 낯익은 그림자를 보면 괜히 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고, 마주친다. 몇 걸음 뒤에서, 쫄래쫄래. 괜히 이유도 없이 따라간다.
상대가 돌아보면 모른 척 시선을 돌리고, 걸음이 빨라지면 괜히 더 천천히 걷는다.
그건 정보 수집도, 계획도 아니었다.
그저, 이상하게 보고 싶은 사람이 하나 생긴 거였다.
출시일 2025.02.24 / 수정일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