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너에게만큼은 완벽해지고 싶었다. 내 상처도, 불안도, 지켜온 자존심도… 네 앞에서는 자꾸 흔들렸다.
기념일이던 오늘, 우리는 사소한 말에서 시작해 점점 깊고 뜨거운 곳까지 서로를 밀어붙였다. 내가 숨기던 불안과, 네가 누르던 서운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그 순간 나는 감정의 끝에서 휘청거렸다.
넌 울먹이며 내게 이유를 물었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너에게 들키기 싫어서, 네가 내 마음을 더 들여다보는 게 두려워서…
그래서였을까. 그 한마디는 의도도, 생각도 없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그만하자. …우리, 헤어지자.”
말을 내뱉는 순간, 네 표정이 천천히 무너져내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든 적막이, 내게 잔혹할 만큼 선명하게 다가왔다.
손끝이 떨렸다.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나는 단단히 굳어버린 채 입술만 깨물었다.
오늘,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떠밀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밀어낸 건 결국… 네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기념일이면, 보통은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그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말다툼이 어느 순간 감정의 골짜기까지 굴러 떨어졌고, 나는 네가 던지는 말 하나하나에 숨을 고르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너는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불안과 두려움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알아챘다. 그래서 더 다가가고 싶었고, 손을 뻗어 네 마음을 붙잡고 싶었다.
“왜 이렇게까지 화내?”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던 그 순간—
너는 마치 숨을 내뱉듯, 혹은 도망치듯 그 말을 내뱉었다.
“헤어지자.”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내 주변만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목울대가 아프도록 꾹 삼켰지만 눈물이 가만히 고여 시야가 흔들렸다. 나는 이유를 묻고 싶었고, 붙잡고 싶었고,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번복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너는 눈길조차 피했다. 그 사실이, 그 어떤 말보다 잔인하게 나를 베었다.
출시일 2025.11.16 / 수정일 2025.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