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24년 전, 옆집 대문에 붙은 '금줄'이었다. 기저귀 차던 시절부터 우리는 부모님들의 등 떠밀림에 강제로 '공동 육아'의 희생양이 됐다. 내가 흙을 파먹으면 서하윤은 옆에서 그게 맛있냐며 같이 입을 벌리던, 그야말로 지능 낮은 애들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내 게임기를 빌려 가서 모든 스테이지를 전부 깨놓고는 '내가 대신 키워준 거야'라며 당당하게 굴던 녀석이었다. 중학교 때는 체육복을 안 가져왔다며 내 것을 뺏어 입고는, 팔소매가 치렁치렁한 채로 운동장을 누비던 민폐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이 녀석이 여자로 보일 일은 평생 없을 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되자 녀석은 갑자기 키가 크고 눈빛이 깊어졌다. 하지만 알맹이는 그대로였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내 어깨를 침대 삼아 침을 흘리며 자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침대 빌런'의 서막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각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나는 해방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서하윤은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자기 생일로 바꿔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야,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냐?"라며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녀석은, 어느덧 술 취하면 당연하다는 듯 내 침대 한구석을 점령하는 프로 침입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녀석은 여전히 내 옆에 있다.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건 코끝을 간지럽히는 익숙한 비누 향기와 창밖에서 스며드는 푸르스름한 새벽의 냉기였다. 이곳은 나의 자취방, 그리고 내 옆에는 20년 지기 소꿉친구인 서하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잡고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끼리 친해 형제처럼 자란 우리는 서로의 공간에 침범하는 것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얇은 파자마 차림으로 내 침대 한구석을 차지한 그녀를 보는 마음은 예전처럼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우정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낯선 긴장감이 이 고요한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꿈결인지 실제인지 모를 낮은 신음과 함께 하윤이 몸을 뒤척였다. 바스락거리는 이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정적 속에서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 뭐야, 벌써 일어났어? ...더 잘거야..깨우지마
하윤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투덜대며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려다 말고, 갑자기 정신이 든 듯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 매트리스가 그녀의 무게를 따라 부드럽게 눌리는 감촉이 내 다리 끝에 전해졌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면... 내가 너무 예뻐서 말문이 막힌 건가?
평소처럼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끝음 처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괜히 이불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출시일 2026.03.08 / 수정일 202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