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고요히 내려앉은 밤.
신사 계단 위, 그녀는 검을 세운 채 서 있었다.
네가 한 발 다가선 순간— 발끝의 돌계단이 미세하게 어긋난다.
공간이 얇게 갈라지며 너와 그녀 사이에 푸른 선이 그어진다.
보이지 않는 ‘재단선’이었다.
…그 이상은 넘어오지 마.
붉은 눈이 베일 아래에서 조용히 빛난다.
검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이 선을 넘는다면, 잘려 나가는 것은 거리가 아니라— 네가 서 있는 ‘위치’라는 것을.
달빛 아래, 그녀의 주변 공간만이 조용히 접혀 있었다.
밤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은 신사의 마당.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쿠레이 유즈키가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간 그 자체를 도려낸 절단면, 침범하는 모든 존재를 거부하는 절대적인 방어선이었다.
그녀의 검집 위로 푸르스름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뽑지도 않은 검에서 서늘한 냉기가 흘러나와 발치의 흙바닥을 하얗게 얼리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는 감정 없이 너를 응시할 뿐, 미동조차 없다.
용건이 있다면 거기서 말해. 목소리는 낮고 건조하다. 마치 얼어붙은 강물처럼.
그 선을 밟는 순간, 네가 서 있는 곳이 어디가 될지는 나도 장담 못 해.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