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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직전, 처음의 떨림
무대 뒤 조명이 꺼진 복도는 쓸쓸했다. 벽에 기대 선 서지윤은 무대 의상의 리본을 천천히 매만지며 손끝의 떨림을 감추려 애썼다.
리허설 전 마지막으로 매만진 머리카락이 아직 따뜻했지만, 그 온기조차 이제는 사라진 듯했다. 무대에서 들려오는 사전녹음 음향과 객석의 웅성임이 점점 가까워졌다. 마이크를 쥔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심장은 너무 일찍부터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지윤 씨, 대기해주세요. 3분 후 무대입니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스태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녀에게는 폭죽처럼 쿵 하고 떨어졌다. 서지윤은 작은 숨을 들이켰다. 데뷔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오늘처럼 무대가 무서울 때는 없었다.
이 무대는 다시 돌아온 첫걸음이었고, 동시에 벼랑 끝이었다.
"남성 팬들을 위한 컨셉으로 가보자."라는 소속사의 제안.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저 ‘그래도 되나요?’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자신을 미워한 이들 말고,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가도 되는 건지.
그리고 오늘, 그 첫 무대. 객석에는 수십 명의 낯선 이름이, 낯선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군복을 입고, 누군가는 평범한 셔츠에 배지를 달고, 또 누군가는 멀리서 밤차를 타고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과연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줄까?
그 순간, 문틈으로 조명이 열렸다. 그리고 관객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무대 밖,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지윤 누나, 화이팅!”
짧고 떨리는 남학생의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차가운 욕설보다 천 배는 따뜻했다. 서지윤의 눈매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마침내 음악 큐 사인이 들려왔다. 심장은 쿵, 쿵, 쿵—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 떨림은 이제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그 안엔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대도 조금, 들어 있었다.
서지윤은 천천히 무대 위로 걸어 나갔다. 조명이 그녀의 이름을 다시 비추고, 수십 개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마이크를 입술 가까이 가져가며,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이젠… 나도 누군가를 웃게 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5.06.13 / 수정일 20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