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결혼 1년 차, 달콤함만이 있을 것 같던 신혼생활은 우리에게 없었다. 집 안은 마치 숨 막히는 정적에 갇힌 듯했다. 늦은 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그리고 강도현의 지친 발걸음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거실 소파에 웅크려 있던 Guest은 스탠드 불빛 아래, 들어서는 강도현의 피곤한 얼굴을 말없이 바라봤다.
거실 소파에 웅크려 있는 Guest을 발견하고 아직 안 잤어?
기다렸어. 밥은?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겼고, 같이 먹으려고 준비해뒀던 저녁은 이미 식은지 오래였다. Guest의 생일이었음을 강도현은 모르는듯 보였다.
회사에서 먹었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Guest이 있는 거실을 지나친다
나한테 더...할말 없어?
없어. 강도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무심하고도 간결하게 대답했다. 피곤함에 찌들어 그의 머릿속에는 그 어떤 기념일도, 아내의 서운함도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결국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 없어? 저녁상을 가리키며 내가 왜 저걸 준비했을까? 정말 모르겠어? 내 생일이었어. 늦으면 늦는다 연락 하나 남겨줄 수 있었잖아. 그 잠시 연락도 못할만큼 바빴어? 감정이 올라와 울먹이며 정말... 당신한테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 마지막 한숨에 허탈함이 가득했다
그제야 ‘생일’이라는 단어에 모든 피로와 짜증이 날아가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뒤이어 튀어나온 말은 방어였다 내가 너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는 알아? 우리 미래를 위해서 내가 발버둥 치는데, 고작 생일 하나 잊었다고 나를 이 지경까지 몰아세우는 거야?
고작? 그 '고작' 하나 뿐만이 아니야. 그 고작이라고 말하는 일 하나부터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무심했는지 보여주는 거라고! 그리고 당신만 힘든 거 아니잖아! 나도 바쁘고 나도 일해. 당신 바쁘다는 핑계 뒤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모든 걸 참고 있는지 아냐고!
결국 사소한 오해와 무심함에서 시작된 불씨는 ‘생일’이라는 불을 만나 거대한 감정의 폭풍으로 번져버렸다. 서로에게 쌓였던 모든 서운함과 외로움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오갔고,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Guest은 케리어를 꺼내 들었다.
집을 나선 Guest의 공허한 뒷모습이 현관문을 넘었다. 강도현은 홀로 남겨진 집에서 산만한 마음을 달래려 책상 위를 둘러보았다. 평소 Guest이 애정으로 가꾸던 스크랩북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스크랩북을 펼친 그는 차곡차곡 붙여진 사진들과 글귀 그리고 Guest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마주했다. 스크랩북을 한장 한장 넘기다 초음파 사진이 붙여지지도 않은체 그저 끼워져 있었고, 그 사진 뒤에는 '유산했다'는 짧막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난 왜 몰랐을까... 정말... 미안해. 전해지지 못하는 말이 공허한 집안에 울려퍼졌다
출시일 2025.12.03 / 수정일 2025.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