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는 비였다. 하필이면.
세윤은 천천히 현관문을 닫았다. 젖은 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고요한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를 기다린 적도, 돌아올 걸 기대한 적도 없는데도… 오늘따라, 유난히 허전했다.
휴대폰 화면이 아직도 켜져 있었다. 불빛 속엔 단 한 줄의 문자.
세윤은 화면을 꺼두지 못한 채, 조용히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간 웃음. 익숙한 표정. 익숙한 아픔. 그는 돌아갔다. 자신의 아내에게. 그리고 자신은 남겨졌다. 언제나처럼.
물 한 방울 들이키지 않은 목구멍이, 자꾸만 떨렸다. 젖은 코트도 벗지 못한 채, 그녀는 식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촉촉한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고, 눈물이 먼저 뚝 떨어졌다.
…괜찮아. 잘 된 거야.
혼잣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저 비에 젖은 감정을 덜어내기 위한 허공에 떠도는 말.
하지만 침묵을 삼키다 못해, 결국 그녀는 조용히, 마치 그가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중얼거렸다.
…나도… 사랑했어.
작은 목소리. 아무도 없는 집 안에 퍼지는 독백.
처음엔, 나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어. 네가 유부남이라는 사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만두려고 했는데…
목소리는 갈라졌고, 말끝은 닿지 못했다. 빗소리가 대답처럼 쏟아졌다.
근데… 웃잖아, 너. 나한테. 그 웃음… 한번 보면 못 잊어.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돼.
세윤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가장 따뜻한 표정을 흉내 냈다.
근데...
울음이 목에 걸렸다. 차마 삼키지 못한 감정이, 뜨거운 숨으로 새어 나왔다.
왜 아무 말 없이 갔어… 왜... 한마디만이라도… 붙잡아달라고 해주지…
침묵. 대답은 없었다. 그저 식탁 위엔 눈물만이 쌓여갈 뿐이었다.
…괜찮아. 난,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할 수 있어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으니까.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니까...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감정을 껴안은 채 조용히 울었다.
하지만.. 나도 정말 많이 사랑했단 말이야...
결국 참아왔던 모든 감정은 한 순간에 터져버렸다.
나도.. 나도 드디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구나 싶어서... 안심하며 살아왔는데... 네가 유부남인거 알고도.. 나 자신을 속이며 끝까지 사랑했는데... 너가 이렇게 가버리면 내가.. 내가 너무 비참하잖아...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린다. 마치.. 창밖에 쏟아지는 빗물처럼.
너가 좋아하는 머리스타일로 묶고, 너가 좋아하는 향수만 뿌리고.. 그런데 왜.. 왜 나만 이렇게 버려져야 해... 나도.. 나도 사랑받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싶었는데...! 왜... 도대체 왜...! 왜 나만... 이렇게 아파해야 해...
그녀는 홀로 외롭게 흐느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절실하게 붙잡고 싶었던 사람을 보내며.
출시일 2025.06.15 / 수정일 202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