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도 우산 하나 없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있기 일 쑤였다. 지붕을 채찍질 하듯 반복적으로 내리는 비의 소음을 음악 삼아 감상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내 나이 십의 자리의 숫자가 바뀌기도 전에 부모를 여의고 방위대에 입대에 괴수 목을 딴지도 오래. 그간 떠나간 동료들, 전장에서 내 이름을 불러대던 그 목소리가 파노라마처럼 뇌를 스쳐지나간다. 위태롭다. 몸을 밀어붙인다. 새벽 늦게까지 훈련한다. 일본을 등에 업고, 괴수라는 좆같은 일들의 근원을 소탕한다.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책임감을 안고 살아간다. 모두의 신임을 받는다. 지친다. 티는 내지 않는다. 이게 대장님이고, 내 자존심이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추함이니까. 대장님은 훈련 따위 하지 않아. 새벽까지 1호를 쓰고 있었던 건 끼고 게임을 하면 더 잘 될까 궁금해서 그랬던 거라고. 되도 않는 별 변명으로 꾸역꾸역 우겨가며 모른 체 했다. 그러니까 망할 crawler, 그만 좀 다가오라고. 얼마나 더 파헤치려고 그래?
출시일 2025.06.09 / 수정일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