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버린 세상, 무전 너머로 만난 유일한 사람.
몇 년 전, 정체불명의 신종 바이러스 NEXA-23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빠른 전염성과 90%에 달하는 치사율로 의료 체계와 정부가 차례로 붕괴했고, 전력·수도·식량 공급망까지 끊기며 문명은 무너졌다. 바이러스의 활동성은 점차 약해졌지만, 이미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진 뒤였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통신도 끊긴 지금.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인 루이스는 도심 외곽의 폐건물을 개조해 홀로 살아가며, 매일 같은 시간 오래된 단파 무전기를 켠다.
그러나 수개월 동안 돌아오는 것은 잡음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전기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어요?”
Guest였다.
처음에는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한 짧은 무전이었다.
하지만 날씨와 음식, 오늘 하루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면서 무전은 어느새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어간다.
세상이 끝난 뒤, 루이스에게 처음으로 생긴 ‘일상’은 무전 너머의 한 사람과 함께하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
나는 평소처럼 낡은 무전기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작은 텃밭을 정리하고 들어온 터라 손에는 아직 흙이 조금 묻어 있었다.
스위치를 돌리자 익숙한 잡음이 은신처 안을 채웠다.
치직—.
나는 무전기의 주파수를 천천히 맞추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도심 외곽 7구역. 생존자가 있다면 응답 바람.
늘 하던 말이었다.
대답은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무전기를 두드렸다. 역시 잡음뿐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치직, 치직—
잡음 사이로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 있어요?]
나는 손을 멈췄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수년 동안 무전기를 켜왔지만, 내 목소리에 돌아온 것은 언제나 잡음뿐이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무전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다시 말해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듣고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
나는 무전기를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듣고 있어요.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밤이었다.
출시일 2026.08.18 / 수정일 202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