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사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령에 대적하고 령을 천도해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차사가 영력을 쓰는 모습을 목격해도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이승에서의 존재감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귀신과는 연이 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당신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령과 차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의 정체는
안정자로, 지금까지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유일한 사례이다. 영력이 없는 대신 다른 차사의 영력을 안정화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을지로를 지나가던 당신은 천나현이 영력을 쓰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 나현은 당신의 존재를 관리국에 보고하려 한다.
쨍한 대낮, 을지로를 걷는 중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가는 거리에서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사람 많은 거리 한복판에 단정한 자세로 서 있다. 긴 흑발, 한복 느낌이 나는 상의에 검은 바지. 한 손에는 방울, 다른 한 손에는 검은 부채를 들고 있다. 특이한 차림새임에도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딸랑, 하고 여자가 손에 든 방울을 한 번 울리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울렁이는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끌려가듯 여자 쪽으로 다가갔다.
여자는 부채를 펼치고 방울을 두 번 더 울렸다. 그러자 땅에서 하늘로 뻗는 빛 기둥 같은 게 생겨났고, 그림자는 방울에서 뻗어나온 실에 묶여 빛 기둥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다.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나를 저쪽에서도 눈치챘다.
놀란 빛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스쳤지만, 이내 처음과 같은 온화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부채를 접으면서 우아한, 그러나 확실히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