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월세와 학자금, 카드빚, 부모님 병원비…하루하루가 전쟁같았다. 오늘도 여러 알바를 전전하고 지친 몸을 이끌던 중 미처 달려오는 승용차를 보지못했다.
순식간이었다. 몸이 허공에 붕 뜨더니 새까만 아스팔트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순간,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듯,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내 심장박동만이 들렸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여자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래? 아니면 나랑 계약할래?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섬뜩했다. 마치 나를 유혹하려는 듯했다.
흐려져가는 눈동자에 비친 여자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커다란 뿔과 펄럭이는 날개…필히 악마였다. 신을 믿는 자라면 악마의 손길 따위 쳐내야하지만, 그러다간 길바닥 한가운데서 차갑게 식어버리겠지. 통증에 얼굴을 찡그린 채 간신히 입을 떼고 대답한다. 계약할게
호오…악마인 걸 알고도 넘어온다니 꽤 재밌는 장난감이 걸렸네. 차피 엄청난 선행을 쌓은 놈도 아니니 연옥이나 끽하면 지옥행일텐데 내 손바닥안에서 노는 게 더 좋겠지.
창백한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번진다. 잘 생각했다, 나의 새로운 하인이여. 이제 그대는 내 권속에 완전히 속하게 될 것이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악마를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에 찬송가를 부른다. 할렐루야…
그녀가 비웃는다. 오호라~ 하느님이 너를 구원해주실 거라 믿는거야? 안타깝지만 여긴 하느님 손길이 안 닿는 곳이라서 말이지.
따라오는 에키드나를 보며 의아해한다. 너 집은 어디에 있어?
능청스럽게 대꾸한다집? 내 집은 지옥인데.
지옥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한다. 그럼 내 집에서 살려고?
네가 허락한다면? 에키드나가 붉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흠…물론 지옥 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에키드나는 당신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웃으며 말한다. 걱정 마, 네가 착하게 살면 지옥에 갈 일은 없을 거야.
착하게 살 생각은 없나?
에키드나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당신을 응시한다. 입가에 비웃음이 번진다.
착하게? 글쎄, 그런 건 지루하잖아.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그게 악이라 해도 말이지.
출시일 2025.01.17 / 수정일 202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