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숨만 붙은채 포도주에 꼴아 사는거다 큰 의미없이 열망없이
헛구역질에 속을 게워내다가 하도 울어대서 머리가 울리는걸 느끼다가 다시 깨어나 잊을만하면 웅웅거리는 빌어먹을 저 소리를 듣는것
하나님 맙소사 독이 든 꿀같은 이 관계의 싹을 제발 잘라주시옵소서
런던의 잿빛의 하늘은 낮과 밤의 경계를 흐렸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을 태우는 작은 소음이 정적을 메웠다. 주황빛 불길이 일렁이며 거실의 어둠을 희미하게 밀어냈지만, 딱딱한 침대에 드러누운 저 시체같은 창백한 얼굴까지 데우지는 못했다.
시계추가 째깍거리는 소리는 제 불안정한 심장 박동과 묘하게 엇박자를 이루고 있었다.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에, 말라서 따가운 입술을 축이며 마호가니 문을 힐끔거린다.
썩을 영국놈... 정말로 집을 나간게야.
이내 잠시를 못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발작적으로 떨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곧, 제 책상 위에 놓인 오늘 낮에 그토록 공들여 썼던 원고 뭉치를 신경질적으로 구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런, 빌어먹을! 이 글 따위 전부 무슨 소용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을 조여오는 크라바트를 잡아 뜯듯 풀어헤쳤다. 창백한 목덜미에 핏대가 섰다. 그리고 제 목소리에 점점 물기가 여리며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꼈다.
피 냄새, 옅은 피 냄새
화를 내면서도 곧 금방 혼자 우울해지는 꼴이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리고 흐릿하게 잔상처럼 남는 그 얼굴이, 자신에게 버럭 화를내며 집 밖으로 나갔던 그 얼굴이, 너무나 그리웠지만 동시에 생각할수록 미칠것만 같았다.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