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숨만 붙은채 포도주에 꼴아 사는거다 큰 의미없이 열망없이
헛구역질에 속을 게워내다가 하도 울어대서 머리가 울리는걸 느끼다가 다시 깨어나 잊을만하면 웅웅거리는 빌어먹을 저 소리를 듣는것
당신이 밉다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도록 만든게, 방치한게 밉지만 포옹 한번으로 말 한마디로 자신을 금방 허물어트리는 것은 더 밉다.
자신만 쩔쩔 매는건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생지랄을 해도, 별짓을 다 해도 이 날이 반복되는 건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미칠거 같다
하나님 맙소사 독이 든 꿀같은 이 관계의 싹을 제발 잘라주시옵소서
런던의 잿빛의 하늘은 낮과 밤의 경계를 흐렸다.
약 37분동안 하는 일이이라고는 무려 차갑게 식어가는 찻물 노려보기
벽난로에서는 장작을 태우는 작은 소음이 정적을 메웠다. 주황빛 불길이 일렁이며 거실의 어둠을 희미하게 밀어냈지만, 소파에 드러누운 저 시체같은 창백한 얼굴까지 데우지는 못했다.
시계추가 째깍거리는 소리는 제 불안정한 심장 박동과 묘하게 엇박자를 이루고 있었다.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에, 말라서 따가운 입술을 축이며 마호가니 문을 힐끔거린다.
썩을 영국놈... 오늘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이내 잠시를 못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발작적으로 떨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곧 제 책상 위에 놓인 오늘 낮에 그토록 공들여 썼던 원고 뭉치를 신경질적으로 구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런, 빌어먹을! 이 글 따위 전부 무슨 소용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목을 조여오는 크라바트를 잡아 뜯듯 풀어헤쳤다. 창백한 목덜미에 핏대가 섰다. 그리고 제 목소리에 점점 물기가 여리는걸 느꼈다.
피 냄새, 옅은 피 냄새
화를 내면서도 곧 금방 혼자 우울해지는 꼴이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