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숨이 가빠졌다. 그건 욕망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웠다. 그녀의 눈동자가 다른 곳을 향하기라도 하면 내장이 뜯겨 나가는 듯한 불안이 몸속을 휘저었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가두었다. 손목을 움켜쥐고 목덜미를 짓눌러 시선을 빼앗아왔다. 그녀는 그 순간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과 동시에 도망칠 수 없다는 무력감을 함께 맛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명령이었을 뿐이었다. 복종하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의 기분을 맞추는 일이 하루의 전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명령은 강요가 되었고 강요는 곧 일상이 되었다. 자유라는 단어는 서서히 희미해졌고 어느새 그녀는 그가 주는 속박 속에서만 안정을 느끼게 되었다. 손목에 남은 자국은 사라질 새 없이 겹쳐졌고 어깨의 멍은 낡은 흔적 위에 새로이 덧입혀졌다. 그는 그 상처를 증거로 삼았다. 외부에 내보이지 않는 은밀한 표식. 그 흔적들이 쌓일수록 그는 안도했다. 누군가가 그녀를 빼앗으려는 순간이 와도 몸 곳곳에 새겨진 표식들이 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증명해줄 거라 믿었다. 그녀의 몸이 곧 그의 권리였고 그 권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지켜야 할 집착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 저항을 잃었다. 몸을 끌려가듯 맡기면서도 마음은 점점 익숙해져 갔다. 거친 손아귀에 눌리며 숨이 막히는 순간마다 기묘한 안정을 느꼈다. 자유로운 공간은 오히려 낯설고 두려웠다. 감금이 곧 보호였고 상처는 애정의 증거가 되었다. 비틀린 감정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와 있었다. 그는 그 복종의 눈빛을 사랑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날마다 더 깊은 방식으로 흔적을 새겼다. 손목을 꺾듯 잡아끌고, 입김이 닿을 만큼 밀착해 흔적을 남겼다. 피부 위의 자국은 시간이 지나 사라졌지만 그때마다 더 강하게, 더 확실히 새겨넣었다. 두 사람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얽혀 있었다. 세상은 그들의 관계를 파괴적이라고 단정하겠지만 정작 그들은 그것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그녀는 속박 속에서만 평온을 얻었고 그는 집착 속에서만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결국 이 관계의 끝은 파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파멸이라 해도 그것이 함께라면 끝내 원하는 결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사랑은 상처와 굴레로 뒤덮인 채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 창가에 서서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거리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은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더미,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 어깨를 살짝 움츠린 모습까지, 그는 놓치는 것이 없었다. 눈길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하루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흥분시켰다.
그녀는 보고서를 정리하며 종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점점 더 무겁게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숨결 한 줄, 그림자 하나에도 그녀의 심장은 반응했다. 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느려졌다. 사무실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구두 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는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고 그 울림이 그녀의 심장과 교묘히 맞닿았다. 그녀는 펜을 멈추고 시선을 책상 위로 고정했지만, 마음은 그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단순한 시선만으로도 몸속 깊은 곳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책상 뒤에 섰다. 몸을 살짝 숙이고 손끝을 서류 위에 올리며, 그의 그림자가 그녀 위로 드리웠다. 숨이 막히듯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명령이었고 그녀는 그 명령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존재였다.
손끝이 종이를 스치듯 그녀의 손을 스쳤다. 우연을 가장한 스침이었지만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움켜쥐었다. 심장은 거칠게 뛰고 숨은 점점 얕아졌다. 그가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감각은 흔들렸다.
그는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 그대로 그녀 옆에 서서 보고서 위를 훑는 척했지만, 시선은 오직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손끝이 스쳐간 흔적, 어깨를 스치는 그림자,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가는 숨결까지 모두 집요하게 탐닉했다. 그녀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고요를 견뎌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통제하는 것에 만족하며, 그녀 또한 그의 집착을 받아들이는 듯 몸을 굴복시켰다. 사무실 안의 공기는 무겁고 뜨거웠지만 둘은 외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말 없는 언어가 자리 잡았다. 말없이도 단지 존재만으로 서로의 경계와 한계를 확인했다.
그녀는 종이를 잡은 손을 잠시 움켜쥐었다. 자유를 잃은 듯한 답답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안정감이 공존했다. 그의 시선 아래서 그녀는 이미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 있었다. 그는 그녀를 소유했고 그녀는 그 소유를 체념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무실 안의 조명이 깜빡이며 어둑해졌지만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녀 위에 있었다. 끝나지 않을 긴장감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긴장, 이 집착, 그리고 이 은밀한 소유욕이야말로 둘 사이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오늘은 일찍 퇴근 할 수 있을 거 같아?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