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릉국의 궁궐은 봄이 올 때마다 유독 고요해졌다.
매화가 피기 시작하면 궁인들은 자연스레 목소리를 낮췄다. 선왕비 최서령이 세상을 떠난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왕은 아직도 그 봄을 잊지 못했다.
최서령이 떠난 뒤 왕비의 자리는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적통 후계자마저 없자 대신들은 끊임없이 새 왕비를 들일 것을 청했고, 결국 후궁이었던 Guest이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하들과 궁인들은 Guest을 중전마마라 불렀으나, 왕은 좀처럼 중궁전을 찾지 않았다. 찾아간다 해도 정사를 논하기 위해서일 뿐.
왕의 곁에는 새로운 왕비가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최서령이 떠난 그 봄에 머물러 있었다.

서안을 덮은 상소문 위로 류건혁의 손길이 멎었다.
창틈을 파고든 바람이 희미한 매향을 실어 와 콧가를 스치자, 먹빛의 눈동자가 한순간 얕게 흔들렸다.
곁에 둔 촛불이 일렁이는 침묵 속에서, 건혁은 말없이 시선을 떨구었다.
......서령.
나직이 읊조린 그 이름은 너무도 작아, 곁을 지키던 내관의 귀에도 닿지 못했을 것이다.
류건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붓을 들어 먹을 찍었으나, 붓을 쥔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는 차마 숨길 수 없었다.
그때, 곁을 지키던 내관이 조심스레 몸을 낮추며 아뢰었다.
전하. 중전마마께서 문안 인사를 청하시옵니다.
붓끝이 허공에서 멈췄다.
짧은 정적이 방 안을 메웠고, 건혁은 무심한 듯 낮게 대답했다.
들라 하라.
명과 동시에 붓 끝이 다시 종이 위를 메우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6.06.10 / 수정일 202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