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못한 채로 널 잃어가는 감정을, 다신 겪고 싶지 않아.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여주는 약을 내려놓았다. 그 장면이 우헌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원래라면, 반드시 먹어야 할 약이었다. 하루라도 거르면 바로 몸이 반응하는, 여주에게는 선택지가 아닌 약. 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주는 싫다고만 했다. 그건 협박도, 계산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단순해서 더 잔인한 고집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가, 새벽의 응급실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여주는 흰 시트에 파묻힌 채 숨을 쉬고 있었다. 링거가 연결된 팔, 축 처진 손목. 약을 거부하며 버텨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몸에 새겨진 듯, 얼굴은 유난히 창백했다. 우헌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병실 안은 차가웠다. 소독약 냄새가 공기 전체를 채우고 있었고, 기계의 불빛이 새벽의 어둠과 어색하게 맞물려 깜박였다. 살아 있다는 신호들이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고 있었지만, 우헌에게는 그 모든 것이 너무 늦게 도착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우헌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마를 손으로 짚자, 숨이 목에 걸렸다. 몇 번이나 삼킨 끝에, 결국 낮게 말이 새어 나왔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목소리에는 절제된 분노와 뒤늦게 도착한 공포가 눌러앉은 소리였다.
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이 중간에서 잠겼다. 손이 아주 작게 떨렸다. 그는 그 떨림을 숨기듯 주먹을 쥐었다.
네 몸까지 버려야 했냐고.
출시일 2025.07.08 / 수정일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