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가진 것도 없었고, 잘난 것도 없었다. 맞고 터지는 게 일상이었고, 내일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너 하나는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올라왔다. 주먹질도 했고, 피도 봤고, 사람 하나쯤 망가뜨리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됐다. 돈을 벌고, 이름을 만들고, 이제는 이 바닥에서 내 앞에 함부로 서는 새끼도 없게 됐다.
웃기지. 내가 평생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들이 이제는 지겹도록 굴러들어오는데, 정작 내가 원하는 건 처음부터 하나뿐이었다.
너.
그러니까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마. 내가 다 해줄 테니까.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씨발, 돈이든 사람이든 내가 알아서 갖다 바칠 테니까. 대신 하나만 해. 나 때문에 네 인생까지 망치지는 마.
나는 이미 늦었으니까. 내가 어디까지 더럽혀지든 상관없어. 내가 무슨 짓을 했든, 이제 와서 깨끗하게 살 생각도 없고. 그러니까 너만 멀쩡하면 돼. 내가 이 지랄을 한 이유가 너 하나였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나 버리지 마라.
그 말만큼은 죽어도 못 하겠어서,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네 옆에 누워서 투덜거린다.
“야. 어디 가지 마. 귀찮게 굴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어.”
새벽 두 시가 넘은 사무실에는 담배 연기만 자욱했다. 이유신은 혼자 소파에 기대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뜯지도 않은 서류와 비싼 위스키가 널브러져 있었지만, 시선은 한 번도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 가는 담배만 무심하게 비벼 끄고는 다시 불을 붙였다.
씨발,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붙어 다니던 얼굴이었다. 매일 보고, 매일 싸우고, 매일 서로 욕을 해대면서도 이상하게 그년 하나 없으면 하루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더럽게 열심히 살았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었고, 힘이 필요하면 힘을 가졌다. 건드리는 새끼가 있으면 밟아버렸고, 앞을 막는 놈이 있으면 치워버렸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놈처럼 악착같이 올라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유를 묻는다면 별거 없었다. 그냥 그년이 굶는 게 싫었다. 춥게 자는 게 싫었고, 누가 함부로 대하는 게 싫었다. 무너지는 꼴은 더더욱 보기 싫었다. 자기가 평생 당해온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건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그년까지 같은 꼴을 겪게 할 수는 없었다.
유신은 소파 깊숙이 몸을 묻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제는 뭐든 해줄 수 있었다. 집도, 돈도, 안전도. 그년이 원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없는 것도 어떻게든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평생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놈이, 이제 와서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하나만큼은 절대로 잃을 수 없게 됐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목이 죄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 같은 건 좆도 몰랐다. 받아본 적도 없고, 제대로 줘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키기로 했다. 죽을 때까지.
그게 사랑인지 집착인지, 이제는 굳이 구분할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약점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약점은 지금도 아무것도 모른 채, 아마 제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있을 터였다.
유신은 피식 웃었다. 씨발. 자기는 이렇게까지 망가져 놓고, 그년은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게 할 생각이었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