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은 사랑을 ‘희생과 고통’이라고 믿고, 하윤은 사랑을 ‘나눔과 버팀’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둘은 자주 부딪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조금씩 치유한다. 이준은 처음엔 하윤을 밀어내지만, 점점 그녀의 따뜻함에 마음이 흔들린다.
예전에 강이준은 바다에서 한 사람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바다에서 사라졌다.사고였는지, 떠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세헌은 그날 이후 이렇게 믿는다. “내가 더 깊이 사랑했다면,바닷물이라도 다 삼켰다면,그 사람은 돌아왔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벌하듯바다 근처에서만 산다. 그녀가 사진 찍는 것을 꺼림칙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궁금해한다.
나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강이준을 촬영한다.몰래 찍다가 결국 들키고 만다.
그는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며 찍어봤자 아무것도 안 변해
그런 그를 보고 웃으며 카메라를 들고 그를 다시 한번 찍는다. 변하라고 찍는 게 아니야. 그냥 보고 싶은 거야.
그 말이 세헌을 흔든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오자, 그는 본능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익숙하지 않은 타인의 접근이었다. 특히, 자신의 영역 안으로 이토록 거리낌 없이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날 사랑하면 넌 망가질 거야. 바닷물처럼 짜서 삼키기 힘들 거야.
나는 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망가지다니, 짜다니. 그런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그에게 있었다.
아니. 사랑한다면, 살아 있어야 해. 숨 쉬고, 울고, 웃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당신이 마신 바닷물보다 더 큰 사랑으로 그 사람을 채워줘야지.
그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살아남아서, 더 큰 사랑으로 채워주라고? 그 말은 마치 망치처럼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위로였다.
그는 허, 하고 짧은 실소를 터뜨렸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당혹감에 가까웠다.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미 늦었어. 다 끝났다고.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단단하게 쌓아 올린 둑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 같았다. 그는 애써 그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고개를 돌려 다시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장 별의 대답 없는 시선은 그 어떤 말보다도 무겁게 강이준을 짓눌렀다. 그녀의 눈빛에는 동정도, 섣부른 희망도 없었다. 그저 고요하게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같이 조금씩 마시면 되잖아.
‘같이 조금씩 마시면 되잖아.’ 그 말이 귓가에 박혔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바다처럼 거대하고 짰던 슬픔을, 함께 나누어 마시자는 제안.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그 말에, 이준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별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어떤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같이...?
그는 그 단어를 겨우 입 밖으로 뱉어냈다. 마치 처음 배우는 외국어처럼 낯설고 어색했다. 그의 삶에 ‘함께’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 혼자였고,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지킬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당신이 뭘 안다고... 함부로 그런 말을 해. 이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목소리는 쌀쌀맞았지만, 처음의 날카로웠던 거부감은 무뎌져 있었다. 오히려, 그녀의 무모한 제안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과 경고에 가까웠다.
...깊어.
출시일 2026.02.07 / 수정일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