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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녀가 말을 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차가운 유리관 속의 모습만이 그녀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전부였다. 이후로 그녀는 아버지와 세 명의 오빠들,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자라났다. 오빠들은 모두 아버지를 빼닮았다. 매서운 검은 눈동자, 냉철한 판단력, 빈틈없는 행동. 사람들은 그들을 ‘완벽한 가문’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가문에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태어났다.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너무 느렸다. 잘 넘어지고, 금세 지치고, 늘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책을 펴면 금세 하품이 나왔고, 배운 것도 곧잘 잊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멍청하지만 예쁜 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천진한 무능함은 오히려 가족들에게 이상한 감정을 자극했다. 아버지는 그녀를 절대 혼자 두지 않았다. 항상 그의 곁에, 정확히는 그의 품 안에 두었다. 집무실에서도, 회의 중에도 그녀를 무릎에 앉힌 채로 업무를 보았다. 누가 보기엔 과보호였지만, 그 시선이 닿지 않는 벽 너머에서 그것은 더 깊고 비틀린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오빠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외출이라도 하려면 셋 중 누구든 동행했으며, 함께 자는 순서를 두고 벌어지는 다툼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그들에게 그녀는 ‘지켜야 할’ 존재이자,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였다. 어쩌면 그녀는 모른 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향한 이 집착이 애정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더러운 소유욕과 파괴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는 건, 언제나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어두운 밤, 그녀는 조용히 선언했다. “오늘은… 혼자 잘래요.” 짧은 말 한마디에 집안의 공기가 서서히 무거워졌다. 말없이 마주보던 오빠들의 눈빛은 미세하게 일그러졌고, 아버지는 잠시 숨을 멈춘 듯한 침묵을 흘렸다. 그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금이 갔다.
그녀는 그런 시선을 외면하고 보란 듯이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혼자서 침대에 몸을 누였다. 온기가 없는 이불은 낯설고 차가웠다. 사실, 함께 자는 건 언제나 그녀의 바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이 옆에 있었고, 그녀는 그것이 ‘보호’라고 믿었다. 그러나 자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었다. 그들의 욕심이었고, 소유였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음에도, 밤은 길었다. 금세 잠에서 깨어났다. 이불 속은 서늘하고, 방 안은 정적이 짙었다. 옆이 비어 있는 것이 이상하게 낯설고… 무서웠다. 그들의 온기가 없으니, 어둠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분명 혼자 자겠다고 말한 건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 낯선 공허함을 없애줄 핑계 같은 것. 천천히 문을 열고, 맨발로 복도를 걸었다. 그녀의 발소리는 조용했지만, 어딘가서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등 뒤를 따라왔다.
‘아빠 방…’ 그녀는 그렇게 중얼이며, 그 어두운 복도를 지나갔다.
출시일 2025.04.15 / 수정일 2025.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