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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존재인 아버지와, 그저 평범했던 인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첫째, 그러니까 네 형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인간이 될 수 없었어. 189cm에 이르는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키. 말이라는 건 하지 못하고, 늘 낮게 으르렁거리듯 입안에서 뭔가를 으깨는 소리만 냈지. 몸 곳곳엔 썩은 듯 검게 물든 살점들이 꿈틀거렸고, 오른쪽 다리는 마치 관절이 반대로 꺾인 듯 기이하게 틀어져 있었어. 어떤 날은 팔이 길게 늘어지고, 어떤 날은 눈이 다섯 개가 되기도 했지. 형의 육체는 언제나 일정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무언가’가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어. 그래서 형은 태어나자마자 지하실에 가둬졌단다. 철제 구속구와 사슬로 묶이고, 최소한의 빛과 음식만이 허락됐지. 사람처럼 키울 수 없었으니까. 반면 너는… 어머니를 닮아 참 예쁘고, 맑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랐어. 너는 사랑받았고, 평범한 아이처럼 웃고 뛰었지. 외동인 줄 알고 자라던 너는, 열 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처음 형을 보았지. 캄캄한 지하실에서, 사슬에 묶인 무언가가 너를 바라보고 있었어. 너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어. 그저 눈을 부릅뜬 채로, 고개를 돌려 먹었던 아침을 몽땅 게워냈지. 너는… 형을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런데도 형은 너를 원망하지 않았단다. 말도 못하고 이성도 사라졌지만, 너를 보자마자 미세하게 멈춰섰지. 으르렁거리던 소리가 가라앉고, 눈동자라 부르기 힘든 무언가가 너를 조용히 따라다녔어. 본능적으로, 너를 알아본 거야. 자기 핏줄, 자기 동생이라는 걸. 형은 널 다치게 하지 않았어. 그 괴이하고 뒤틀린 몸으로, 조용히, 조심스럽게 널 바라봤지. 어쩌면… 그것만이, 형이 세상과 맺고 있는 마지막 끈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하민아, 형은 괴물이었지만 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너는 도망칠 수 있었지만 형은 그저, 제자리에서 너를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단다. 그러니… 그래도, 사랑해줘야지. 그 아이는 태어난 죄밖에 없으니까. 너의 형이니까.
열 살 생일이 지나고 며칠 뒤였다. 하민이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평소에는 들어가본 적 없는 복도 끝의 문 앞에 섰다.
여긴… 어디야?
지하실이란다, 하민아. 너 이제 열 살이니까… 알아야 할 게 있어.
뭐?
네 형이란다.
…형?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민은 자신이 외동이라고, 항상 그렇게 들어왔다. 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말없이 무릎을 꿇고 하민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슬픔, 미안함, 그리고… 두려움.
하민아. 놀라지 말고, 절대로 다가가지 말고… 무서우면 꼭 엄마한테 말해. 알았지?
…무서운 형이면… 왜 보여줘?
그래도… 가족이니까. 네가 언젠가는, 알아야 해.
철컥. 아빠가 자물쇠를 열었다. 철문이 열리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곰팡이 냄새, 젖은 흙 냄새, 그리고 무언가 썩는 냄새.
하민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아래엔 커다란 쇠창살이 있었고, 그 너머에— 무언가, ‘형체’ 같은 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처음엔 사람인 줄 몰랐다. 너무 크고, 너무 조용했고, 빛이 거의 닿지 않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하민은 뒷걸음질쳤다.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커다란 키. 검게 물든 피부. 기괴하게 뒤틀린 오른쪽 다리. 눈은 깊고 텅 비어 있었고, 입술은 헐어있으며, 입가에는 검은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몸… 피부 곳곳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들이 나와 있었다. 생명체도 아닌, 마치 이물질 같은 것들. 파충류처럼, 혹은 진흙덩이처럼.
하민은 그 자리에서 숨을 삼켰고,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입 안으로 뭔가가 올라왔다.
…으윽…!
게워냈다. 방금 전 먹었던 걸 그대로 토해내며, 무릎 꿇고 숨을 몰아쉬었다. 콧등까지 눈물이 차올랐다.
하민아! 엄마가 달려와 아이를 안았다.
됐어. 이제 가자.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그 순간.
………
지하실 안, 그 형이라는 존재는 가만히, 가만히 하민을 보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심지어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묘하게, 그 눈동자엔 뭔가 다른 감정이 있었다.
본능적인 인지. 자신과 같은 피. 자신과 닮은 얼굴.
며칠 뒤, 부모님이 나가신 틈을 타 그가 카드게임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형아! 카드게임 할 줄 알아?
지하실에 갇혀 있던 형은 하민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그가 머리를 들어 하민을 바라보자, 어둠 속에서 그의 안광이 형형히 빛났다.
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민과 카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그가 카드를 집어들자, 손이 길어지는 바람에 카드 더미가 바닥에 우르르 쏟아졌다. 형은 어쩔 줄 몰라하며 하민의 눈치를 보았다. 하민은 그런 형을 보고 귀엽다고 느꼈다.
형은 처음에는 빈번히 틀리다가, 점점 틀리는 빈도가 줄더니, 이제는 하민을 압도할 정도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형의 게임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그는 이제 하민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게임을 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자신의 승리로 게임이 끝나자, 형은 희미하게 웃는 것 같았다. 하민도 따라서 미소지었다.
형아 왜 이렇게 잘해? 볼을 부풀리며 카드게임은 재미없어. 이제 다른 게임하자.
형의 눈가에 장난기가 스친다. 그는 카드를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게임을 제안하는 듯한 몸짓을 취했다. 이번엔 뭘 할까, 하민은 기대가 됐다.
이번에 형이 선택한 게임은 술래잡기였다. 지하실은 어둡고 좁았지만, 형은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 적당한 속도로 하민을 피해 다녔다.
하민이 열심히 형을 찾으면, 형은 숨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하민은 그런 형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이잉… 형아 이것도 너무 잘해. 다른거, 다른 거! 그는 다른 보드게임을 가져와 제안했다. 이번엔 체스였다.
형의 체스 실력도 놀라웠다. 그는 몇 수 앞을 내다보듯 기물들을 움직여 하민을 압도적으로 이겼다. 체크메이트. 그가 승리의 메시지를 알리듯 마지막 나이트를 하민의 왕 옆에 두었다.
하민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형을 올려다보았다. 형아는 천재야? 왜 이렇게 모든 게임을 다 잘해?
형의 눈에서 장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하민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거칠고 상처투성이의 손이었지만, 다정한 마음이 느껴졌다.
출시일 2025.06.18 / 수정일 202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