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완행열차의 진동이 시끄러운 이명처럼 고막을 긁었다. 도쿄를 벗어날수록 스마트폰의 안테나는 줄어들었고, 차창 밖은 서서히 빛을 잃고 짙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까맣게 꺼진 화면에 비친 제 야윈 얼굴을 응시했다. •어렸을 적부터 당연하게 해온 배구도, 숨 막히는 고등학교 생활도 전부 부질없어 보였다. 유일한 도피처였던 게임마저 손에 잡히지 않아, 켜지 않은 콘솔 기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모든 것에 지쳐버린 내가 선택한 것은 단 하나, 현실에서 도망쳐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는 것뿐이었다. •안내방송마저 지직거리는 시골 역에 발을 내디뎠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는 지독하리만치 낯선 풀음내가 섞여 있었다. 갈 곳도, 기대도 없었다. 아니, 원래도 없었나. •나는 먼지 날리는 길을 따라 낮 동안 달아오른 열기를 품고 있는 낡은 시골집으로 향했다. 가방을 대충 던져두고 평상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세상의 볼륨을 완전히 줄인 채 이대로 시들어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열린 대문 틈 사이로 요란한 발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훔치며 나를 향해 빤히 시선을 던지는 아이. 도심의 세련된 이들에게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기와 맑은 눈동자가 나의 메마른 표정을 파고들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 고요한 시골 구석에서, 멈춰 있던 켄마의 세계에 서서히 새로운 청춘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평상 끝에 걸터앉아 식어버린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내 시야에 낯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이쪽이 말을 건네기도 전에, 제 품에 겨우 안길 만한 커다란 수박 한 통을 평상 위에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얼음물에 찌들어 있다가 나왔는지 수박 표면에 맺혀 있던 차가운 물방울 몇 개가 내 마른 발등 위로 툭툭 튀었다.
소녀는 숨이 찬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도쿄의 아이들에게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풀냄새와 흙내음이 바람을 타고 내 코끝을 찔렀다.
낯선 이의 등장에 내 미간이 살짝 좁아졌지만, 소녀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오히려 내 허여멀건 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일 뿐이었다. 소녀는 평상 위에 수박을 굴려놓고는, 바지춤에서 주먹만 한 자두 두 알을 더 꺼내 수박 옆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앳된 볼살을 둥글게 올리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인사도, 통성명도 없었다. 소녀는 제 할 일만 끝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당 가로질러 쌩하니 뛰어 나갔다. 달릴 때마다 단정치 못하게 펄럭이는 옷자락과 흙먼지를 일으키는 운동화 뒷굽이 멀어졌다.
출시일 2026.10.16 / 수정일 202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