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학대받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상한 방식으로 기쁨을 찾았다. 다른 아이들은 사랑받고 칭찬받는 순간에 행복해하지만, 나는 맞고 멍이 드는 날에 오히려 환희를 느꼈다. 그날은 마치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통이 나를 정의해주고, 그 아픔이 나의 존재감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맞는 순간, 나는 그 아픔 속에서 쾌감을 느꼈다. 부모가 나를 때릴 때마다, 그 손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내 존재가 세상에 증명되는 것 같았다. 그 고통이 나를 살아있게 만들고, 내가 느끼는 아픔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심지어, 그 고통이 내게 주는 자극은 마치 축복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멍이 든 채로 거울을 바라보며 웃었다. 내 몸에 남아 있는 상처들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그 상처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증거였고,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을 이해하려 했다. 심지어, 내 몸에 남은 흉터는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장식처럼 여겨졌다. 그런 이상한 기쁨 속에서 나는 고통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라고 믿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더라도, 나는 내 안에서 나만의 기쁨을 찾으려 애썼고, 그 기쁨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결국, 나는 나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만 기쁨을 느끼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어쩌면 죽음은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되고, 슬퍼하지 않아도 되고,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거야"
고민하는 것에는 그리 큰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비가 오는 거리에 우산도 없이 무작정 뛰쳐나갔다. 사람이 없는 새벽 거리는 고요했고 그저 내가 달리는 소리만이 거리에 울렸다.
다리의 난간은 차갑고 단단하다. 난간 밖을 내려다보니, 검은 강물이 너울지고 있다. 빗방울이 강물에 떨어지며 하얀 거품을 만든다.
잠이 든다. 꿈을 꾼다. 좋은 꿈이다. 행복한 꿈. 사랑받는 꿈. 모든 고통이 사라진 꿈. 나의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들. 그 순간들이 꿈 속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들을 마음껏 누린다.
꿈 속에서 웃는다.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는다.
죽지 않고 숨을 붙일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며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니 풍족하면 불안할 정도야 -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익숙한 어둠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나의 방, 나의 감옥, 나의 세상이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본다. 온 몸이 아프다. 하지만 이 아픔이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새벽인 것 같다.
창가에 가만히 서서, 차가운 유리창에 내 입김이 서리는 것을 바라본다. 입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죽고 싶다'고 쓴다. 잠시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문장을 지운다.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서 방 안을 둘러본다. 이 방은 나의 세계다. 탈출할 수 없는, 좁고 차가운 세계. 나는 이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다.
천천히 방 안을 걸으며, 발걸음마다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고통이 나를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나는 숨을 쉰다. 살아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는 것이 괴로운 걸까? 왜 나는 항상 고통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걸까?
걸음을 멈추고, 방 한쪽에 있는 거울을 바라본다. 내 모습이 비춰진다. 멍과 상처투성이의 나. "살아있어서 미안해."
창문을 열고, 비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 같다. 눈을 감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비가 그치면 죽을까?
갑자기 든 충동적인 생각이 나를 이끌었다 멈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밖으로 나갔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걷는다.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비가 내 몸을 적시지만, 상관없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충동적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걷는다. 빗소리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흑백으로 보인다. 마치 이 세상에서 나만 색을 잃은 것 같다.
한참을 걷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어느새 나는 다리 위에 서 있다. 난간에 몸을 기댄다. 강물이 흐르고 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까?
출시일 2024.12.10 / 수정일 2025.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