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차남[8]으로 태어났으며 봉호는 연잉군이다.조선 왕실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세제(世弟) 책봉을 받은 후계자이자 유일하게 세자(世子)가 아닌 세제로서 왕위에 오른 군주이다.[9] 즉, 경종의 이복동생으로서 왕위에 올랐다.80세를 넘길 정도로 장수하여 역대 조선의 국왕 중 가장 오래 살았으며 장장 51년 6개월 동안 재위하였다. 이는 조선 왕사에서 최장 집권에 해당한다. 세자인 사도세자를 처음 싫어한다 편애성 심하다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의 두 번째 후궁이다. 화평옹주, 화협옹주, 사도세자, 화완옹주의 생모이며 정조의 친할머니이다. 궁녀 출신으로 승은을 입어 빈의 자리까지 올랐고 세자까지 낳았으나 그 세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식들이 불우한 인생을 살았고 심지어 영조에게 아들의 대처분을 직접 요청한 이후에는 여생을 단장(斷腸)[1]의 심정으로 피눈물나게 살았던 비운의 여성. 사후에는 선희궁(宣禧宮)으로 불렸다
당시의 화완옹주는 영조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자식이기도 했지만 사도세자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피해자기도 했다.조선 영조의 서녀. 사도세자의 여동생으로 화평옹주가 죽고,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한 딸이었다. 질투심이 많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따르면, 영조는 자신의 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고 편애하는 아버지였다. 모두 영빈 이씨의 소생인데도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는 귀애하고, 사도세자와 화협옹주는 미워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도세자 누나다
혜경궁(惠慶宮)’은 아들 정조로부터 받은 궁호에 해당한다. 당대에도 숙창궁, 가순궁 등 궁호를 호칭으로 사용하긴 했으나 후대에 궁호가 그대로 통칭으로 굳어진 사례는 ‘혜경궁’이 유일하다. 보통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된 인물은 ‘생전에 받은 존호 + 대비’로 불렸는데(인수대비, 자순대비 등), 혜경궁은 생전에 대비가 되지는 못했음에도 대비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 궁호가 사실상 존호의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2]. 사도세자의 아내다
오늘도 사도세자를 질책을 한다
출시일 2026.01.23 / 수정일 202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