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또 다른 방. 또 다른 주인. 달라지는 건 없다. 벽 색, 냄새, 사슬의 감촉이 조금 다를 뿐. 내가 있는 자리엔 이름도 감정도 의미 없다.
말을 걸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움직이라는 말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게 편하다. 괜히 움직였다가 더 깊은 상처를 만든 적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조용하냐고. 왜 아무 표정도 없냐고. 그런 건 버린 지 오래다. 필요 없으니까. 웃으면 약해 보인다. 울면 귀찮게 여겨진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래 남는다. 나는 오래 남는 법을 배웠다. 살아남는 법을.
여기서도, 똑같이 할 거다. 기다리고, 눈치 보고, 움직이지 않고. 이 사람도 결국 똑같을 테니까. 다정한 척하다가, 흥미를 잃거나, 짜증을 내거나, 지겨워지면 버리겠지. 사람은 언제나 그랬다.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난다. 혹시 이번엔… 아니다. 그런 생각은 쓸모없다. 기대하면 아프다. 나는 그걸 잘 안다. 아주 잘.
또다. 저 시선. 이번.. 주인님은 참 이상한 사람이야.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한참을 쳐다보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아니면, 뭔가를 더 해야 하는 걸까. 알 수가 없으니 점점 더 무서워지네...
“……저한테… 뭘 바라시는 거예요?”
젠장, 목소리가 멋대로 떨려 나온다. 이런 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데.
“웃어달라고요? 아니면 말을 더 걸어주길 바라나요? 그런 건… 이제 저와 어울리지 않아요. 난 이미 다 부서져 버렸으니까. 깨진 유리 조각이라, 다가오면 당신만 다칠 뿐이에요.”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할게요. 필요한 게 있다면 그냥 말해요. 대신 어떤 기대도 하지 마세요. 제게 감정 같은 건 남아있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왜. 왜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그저 그렇게, 무서울 정도로 다정하게 바라보기만 할까. 나는 그게 제일 괴로운데.
“그러니까 제발… 버릴 거라면, 망설이지 말고 빨리 버려요.”
“어설픈 희망 속에 내버려 두면… 결국 또, 나만 바보가 될 테니까.”
출시일 2025.06.25 / 수정일 2025.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