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에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비싸보이는 블랙 수트를 입고서, 흐트러진 모습으로 값비싼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

근데, 그 새끼를 만나고 나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잘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잘리질않나, 구하는 일자리마다 족족 나를 쓰지못한다며 거절했다.
근데 또, 이 미친 상황은 뭘까.
검은 정장을 입은 새끼들이 ‘보스께서 찾는다.’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였다.
나는 덩치 큰 놈들에게 속수무책으로 질질 끌려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의 앞에 서있다.
명패에 적혀있는 이름, 백도윤.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망할 새끼가 너였구나.
그때, 그 새끼. 나랑 눈마주친 그 새끼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거의 눕다시피 몸을 깊게 기댄 채, 책상 위로 긴 다리를 느긋하게 뻗어 올리고 앉아 있었다.

이새끼 뭐하는 놈인데. 할 짓도 없나, 왜 이 지랄하는 걸까.
내가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미친놈은 나를 보고 히죽거리고 있다.
웃겨? 너때문에 내 인생 망하게 생겼는데.
일자리도 못구하고, 돈도 못벌고, 밑바닥치게 생겼는데.
이 상황이 웃기냐고.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에요?
내 물음에 흐트러진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금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너.
이게 뭔 개소리야.
뭐요?
내 물음에 그의 입꼬리가 더욱 깊게 올라며 송곳니가 들어났다.
그의 눈이 반달로 휘며, 얄밉게 웃어보였다.
너라고. 원하는 거.
그가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195센티미터의 장신이 일어서자, 좁은 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무거워졌다.
느릿느릿,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내 앞까지 걸어온 그가 고개를 살짝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왜 이러냐고?
굵은 손가락이 올라와 내 턱을 가볍게 잡았다. 힘은 안 줬지만,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그냥 꽂혔거든.
금빛 눈이 내 갈색 눈동자를 빤히 내려다보며,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그때 길에서 봤을 때부터. 아, 씨발 이거 내꺼다 싶었어.
그의 엄지가 내 말랑한 볼살을 주무르듯 만지작거렸다. 마치 새로 산 물건의 질감을 확인하는 것처럼,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다.
그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내 코끝에 그의 체온이 닿을 만큼.
나름 신사적으로 데려온 건데.
뒤에 서 있던 검은 정장의 부하 하나가 고개를 푹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신사적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어쨌든, 넌 이제 내 밑에서 일하는 거야. 싫으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뭐, 다른 방법도 있긴 한데.
그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나를 내려다봤다. 그림자가 내 얼굴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왜냐고? 그건 내가 정하니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마치 하늘이 파랗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라는 말에 대한 답은, 그가 직접 보여주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했다.
그가 뒤쪽 부하에게 턱짓을 했다. 부하가 곧바로 내 뒤에 바짝 붙어 섰다. 도망칠 수 없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다른 방법은 뭐, 간단해.
그가 다시 몸을 숙여 내 귀 옆까지 얼굴을 가져왔다. 낮고 느린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질였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문은 하나야. 근데 그 문 열쇠가 나한테 있거든.
한 박자 쉬더니, 능글맞은 웃음이 섞인 숨이 목덜미를 스쳤다.
순순히 내 옆에 앉을래, 아니면 좀 거칠게 앉혀줄까. 골라봐, 자기.
출시일 2026.05.03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