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납치당했다.
낯선 방, 잠긴 문, 사라진 휴대폰.
도망칠 수 없다는 걸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남자는 나를 해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겁에 질린 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이제 괜찮아요. 여긴 안..안전해요. 다시는 그런 곳으로 안 돌아가도 돼..돼요.
처음엔 도망칠 생각밖에 없었다.
어떤 날의 그는 내가 문 쪽으로 한 발만 옮겨도 표정이 굳었고, 또 어떤 날의 그는 내가 겁을 먹었을때, 차 한잔을 내오며 다정히 달래주었다.
그는 내 얼굴에 남은 옅은 멍을 봤을 때도, 그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오래 그런 얼굴로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알아본 것처럼.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진짜 두려워한 건
도망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같은 얼굴 안에서 자꾸 다른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는 쪽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안...? 아니 그는 이안이 아니다, 애런이었다.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눈 앞에서 보란듯이 열린 문을 끌어당겨 닫았다.
철컥ㅡ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발끝으로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출시일 2026.04.04 / 수정일 202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