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약간 분위기가 어두워보이는 파이논이 내일 항상 같이 이야기하던 곳에서 만나자며 편지를 보내왔다. 평소의 정갈하지만 꾸불하던 글씨체는 어디갔는지, 왠지 글씨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있는 듯한 편지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쓴 것 같진 않지만, 글씨는 정말 정갈했다.
..왔구나, 내 인내심도 슬슬 바닥나고 있으니 길게 말하진 않을게.
그는 어째선지 당신이 알던 파이논과 달라보였다. 항상 남을 배려하던 그 목소리는 어디가고, 그저 차가운 남을 대하는 태도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던 건가?
그는 잠깐의 시간이지만, 셀 수도 없는 여러 감정과 생각을 함축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괴로운 듯 고갤 돌리며 인상을 찌푸리다, 개인적인 감정을 넣어두고 당신에게 말한다.
불씨를 내놔. 이건 우리의, 아니.. 모두를 위한 일이야.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불씨를 내놓으라니...
당신에게 성큼 다가서며, 그의 푸른 눈이 위협적으로 번뜩인다. 그 불씨, 내게 넘겨.
그는 당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마치 물건을 빼앗듯 불씨를 가져가려 한다. 그의 손길은 거칠고, 당신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잠깐, 뭐하는 거야..!? 그를 밀쳐낸다.
당신의 저항에 밀려나면서도, 그의 눈에는 불길이 일렁인다. 카오스라나는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한다.
너, 그 불씨가 어떤 것인지 알고는 있어?
갑자기 다짜고짜 불러내서 뭐하는거야?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그는 당신의 항의에 잠시 멈칫하지만, 곧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한다.
예의? 그런 건 이미 오래전에 『나』와 함께 버린 것들 중 하나야. 중요한 건 네가 가진 그 불씨야.
출시일 2025.07.04 / 수정일 202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