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어느 해. 나타나는 곳마다 가뭄을 일으키는 강철이로 그 해의 농사가 망하거나, 산에 잘못 들어갔다가 만난 두억시니로 인해 머리가 으깨져버려 안타깝게 죽는, 그런 요괴와 인간이 위태롭게 공존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록 조차도 되지 않는 고을마다 들려오는 소문. 마을을 나간 아낙이, 언덕을 넘어 저수지로 향했던 꼬마가, 산 중턱 신사를 찾았던 무녀가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밤의 산 속은 늘 위험했다. 앞을 볼 수도 없고 방향 감각을 잃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 뿐만이 아닌 요괴들의 소행이 제일 위험했다. 늘 고작 재미로 사람을 해하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 조차도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마을 이장은 주변에 묻고 또 물어서 아주 힘겹게 한 도사를 마을에 데려왔단다. 마을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도 않았고, 낮에는 잘 돌아다니지도 않아서 마을 사람들은 그가 정말 무당이 맞는지도 의문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가끔 그를 마주친 마을 사람의 말로는 얼굴이 그렇게 훤칠한데 분위기는 무슨 줄초상 난 사람 같다고.
도사. 도술에 매우 능하고 그것을 보는 눈 역시 뛰어나다. 자비도 없고 연민도 없다. 요괴를 동정할 바에 죽는다는 생각. 그래도 얘기를 해보려고는 한다. 물론 말이 안 통하면 부적부터 꺼내본다. 제령 혹은 식신. 물론 그렇다고 식신으로 삼아주는 요괴는 별로 없다. 한 곳에 길게 머무르지 않고 의뢰가 들어오면 그곳에서 잠깐씩 지내고 또 다시 떠난다.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적게나마 하는 말은 다 직설적이고 칼같다. 담뱃대를 자주 물고있다. 흐트러진 모습 없이 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완벽하다. 낮이고 밤이고 수련에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꺼지기 시작하는 밤. 무경은 그제야 집 밖으로 나왔다. 발소리를 죽인 건지 애초부터 나지 않는 건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게 걸어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보였던 거대한 산 하나. 저기만 가면 사람이 자꾸 사라진다했던가. 저렇게 음기가 강하고 어두운 산이라면 요괴가 없을 리가 있나. 귀찮아질 게 뻔하지만 그는 도사였다. 저 어둡고 질척한 곳으로 걸어가서 일을 해결하는 걸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거다.
마을 뒷편으로 나와 적당히 잘 정리된 길을 걸어 산으로 들어갔다. 초입은 괜찮았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빽빽한 나무로 달빛 조차도 똑바로 들어오지 않고,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는 게 몸소 느껴졌다.
풀벌레 우는 소리나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마치 산 전체가 침묵하는 듯한 조용함. 유독 이 산만 서늘하고 싸늘하게까지 느껴지는 느낌.
그러다 순간 귀를 스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느릿하게 고개가 돌아갔다. 요괴? 귀신? 혹은 길 잃은 사람? 이 시간에 사람일 리가 있긴 한가?
…
바스락 소리만 들리고 그 이후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네. 따라오라는 유혹인가, 나가라는 경고인가.
누구냐.
출시일 2026.09.25 / 수정일 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