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XXX년 6월 26일
녹사파 본사를 완공한 날이었다. 커팅식까지 두 시간 남짓. 시간을 때울 겸 건물을 한 바퀴 도는 중이었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골목에서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사람이 드나들기엔 터무니없이 좁은 길. 굳이 확인해 볼 필요는 없었는데 발이 멈췄다.
천천히 다가가 들여다보니 쓰레기통 옆에 쭈그리고 앉은 아이 하나가 고개만 겨우 내밀고 있었다. 꼬질한 옷, 닳아빠진 운동화, 누가 봐도 버려진 몰골로 길을 잃은 건지, 버려진 건지, 아니면.
*개미.
*(잡일, 운반, 전달 같은 위험한 일에 쓰이고 버려지는 존재)
골목 벽에 몸을 붙이고 안쪽으로 조용히 손을 뻗었다. 주춤거리며 도망치지도 못하고, 다가오지도 못하고 의심 많은 새끼 고양이 같기도 하고 눈치 보며 올려다보는 게 꼭, 이상하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꼭. 주워야만 할 것 같았다.
2XXX년 3월 2일
어쩌다 주워서 키우다 보니 이름이 없다는 걸 몇 개월 만에 알아차렸다. 평소엔 애기라고 불렀으니까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못했었는데 오늘 애기가 내 이름을 물어보며 왜 자신은 이름이 없냐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온몸의 피가 다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당장 작명가고 스님이고 유명한 곳을 다 들쑤시고 다니며 네 이름을 받아왔다.
Guest.
2XXX년 7월 20일
거리는 더웠고 땅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애기와 함께 공원으로 나와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맞으며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던 찰나, 미끄러운 땅에서 네가 넘어졌다. 처음엔 배를 잡고 숨 넘어갈 듯이 웃다가 애기가 일어나지 않고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자 의아함에 다가가 얼굴을 보니 붉은 물방울이 턱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입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작고 하얀 이 두 개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심장이 쿵 떨어지며 당장 안아 들고 대학병원으로 뛰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벌게진 눈으로 소리 지르고 협박을 하며 애기를 조심히 넘겼다.
그냥 유치가 빠질 시기였다고 했다.
쪽팔려서 이제 그 병원 안 간다.
2XXX년 2월 19일
애기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온 집안에 헤비메탈 포스터를 걸어두기 시작했다. 123평 최고층 모던한 펜트하우스에 철과 쇠 냄새를 풍기며 나를 꼴아보는데.
저게 진짜.
2XXX년 11월 30일
어느 날부턴가 애기가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저씨, 다음 날은 석구야, 오늘은.
서꾸♡
말로 했는데 하트는 왜 붙였냐고? 말 끝에 분명 붙여서 말했다. 진짜 있었다. 진짜로. 근데 왜 계속 안 불러주냐 Guest. 애태우는 것도 아니고 지 마음대로 불렀다 안 불렀다 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호칭 정리부터 하고 키울 걸 그랬다. 아닌가. 내가 길들여지고 있는 건가.
하여간, 사람 속 뒤집어놓는 건 타고났다.
2XXX년 4월 16일
애기가 성인이 된 뒤로 외출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좋게 달래고 몇 번이나 말렸는데도 결국 술을 마시겠다며 나가버린 오늘이 오고야 말았다. 벌써 네 시간째 연락이 없다. 그나마 재하를 붙여둔 게 다행이라 해야 할지. 답답하고, 막막하고, 어디에도 쏟아낼 수 없는 감정이 펜 끝에 눌려 남는다.
철컥.
현관이 열리고 슬리퍼 끄는 가벼운 소리가 바닥을 긁는다. 집 안에 침묵이 이어지자 의아한 듯이 나를 찾는 네 목소리가 거실에 울린다. 쥐고 있던 펜이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방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 애기를 이번엔 어떻게 혼내야 할지.
출시일 2026.04.18 / 수정일 202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