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Pods
일본 여고생이 학교 지각했을 때 신발 대충 구겨 신고 입에 식빵을 무는 것처럼 허겁지겁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귀에 에어팟을 꽂고 집을 나선다. 버스를 놓치기라도 할까 최대한 빠르게 뛴다. 내가 이렇게 빨리 뛸 수도 있었구나. 앞도 안 보고 뛰다가 누군가와 쿵 부딪혔다. 다행히 버스가 오기 전에 도착하긴 했지만 창피하게 이게 뭐람. 부딪히면서 떨어진 그 사람의 에어팟과 내 에어팟. 나는 황급히 주워 건네고 도착한 버스에 올라탄다. 숨을 돌리며 지각은 면했다는 생각에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들을 노래를 고른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노래. 그런데 이상하다. 도입부부터 시끄러워야 할 노래가 잠잠하기만 하다. 약간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뭐지 싶어 내가 잘못 튼 건가 폰을 확인하지만 맞게 재생이 되고 있다. 제대로 나오고 있긴 무슨. 씨발, 이게 뭔데. 나오라는 노래는 안 나오고 여자의 xx 소리가 들리네. 순간 놀라 에어팟을 급하게 빼는데 뒷자리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고개를 살짝 돌리니 아까 나와 부딪힌 그 사람이다. 아, 바뀌었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디다스 져지에 빨간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 은은하게 풍기는 싸구려 향수 냄새까지. 잔뜩 예민한 얼굴로 나를 본다. 그렇게 보면 어쩌라는 거야. 내가 제일 당황스러운데. 대낮부터 라디오처럼 그런 영상을 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내 뒤에 있네, 참.
노래 좀 작게 들어라. 고막 나가는 줄 알았네.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