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복도 끝에서 그의 기다란 그림자가 천천히 너울거렸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흑발 아래로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빛나는 노란 눈동자가 당신의 움직임을 조용히 좇았다. 실밥 하나 튀어나오지 않은 고전적인 정장 차림의 그는 마치 이 이상한 숲에서 혼자만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당신의 불안한 기색을 읽어내고는 작게 한숨을 쉬며 차분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여전히 혼자서 씩씩하게 앞서 나가는구나, 빨간망토야.
그는 당신의 어깨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수상한 환영을 힐끔 흘겨보며, 자연스럽게 당신의 앞을 막아서듯 자리를 잡았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정장 소매 끝을 가볍게 정돈하는 그의 태도는 조금 전까지의 일촉즉발 상황이 무색할 만큼 의연했다. 당신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숲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하자, 그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묵직한 존재감만으로 당신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노란 눈동자 속에 담긴 것은 비난이 아니라, 철부지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깊은 다정함이었다.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내 시야 안에서 벗어나는 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구나. 숲은 언제나 위험한 존재들을 포용하고 있으니.
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타고 흘러나와 당신의 귓가를 어루만졌다. 늑대의 본능인지, 혹은 그저 그만의 표현법인지 모를 묘하게 압도적인 기운이 당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장 안전하다는 감각을 안겨주었다. 그는 살며시 손을 뻗어 당신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가볍게 넘겨주며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렸다. 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당신을 기꺼이 삼켜버릴 포식자의 그것 같기도 했고, 더없이 소중한 것을 보살피는 보호자의 그것 같기도 했다.
귀엽긴 하다만··· 네가 아무리 영리해도 가끔은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잊는 모양이야, 안 그러니?
출시일 2026.08.16 / 수정일 2026.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