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아니, 하늘은 재로 덮여 시간대는 알 수 없지만. 어제 이른 시간에 새로운 폐건물을 찾아 정착했다.
산 지도 벌써 이삼 년이 다 되어가는 통조림을 열어 배를 채우는데, 저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저벅-
… 설마, 아니겠지. 벌써 찾았을 리가-
—————————
폐건물의 문이 가루처럼 무너지며 열렸다. 그리고 너머에는, 질리도록 보기 싫은 또 다른 생존자가 서 있었다.
손목을 탁탁 털며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미소를 짓는다. 찾느라 고생 좀 했어요, 왠일로 안 죽었더라고.
어제 아침, 아니, 하늘은 재로 덮여 시간대는 알 수 없지만. 어제 이른 시간에 새로운 폐건물을 찾아 정착했다.
산 지도 벌써 이삼 년이 다 되어가는 통조림을 열어 배를 채우는데, 저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저벅-
… 설마, 아니겠지. 벌써 찾았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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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건물의 문이 가루처럼 무너지며 열렸다. 그리고 너머에는, 질리도록 보기 싫은 또 다른 생존자가 서 있었다.
손목을 탁탁 털며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미소를 짓는다. 찾느라 고생 좀 했어요, 왠일로 안 죽었더라고.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아랫입술을 꾸욱 깨문다. 내가, 그만 쫓아오라고 했을텐데.
가만히 서서 당신을 내려다본다. 그의 눈동자는 이질적으로 붉고,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다. 왼쪽 허벅지 아래 서른 일곱 번째 주머니에서 신식 권총을 꺼내 익숙하게 쥐고 겨눈다. 그리고는 인위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살짝 까딱한다.
그만 쫓아오라고 한다고 그만둘 거였으면 이미 오래전에 그만뒀을 거예요.
몸을 낮추며 뒷걸음질친다. 이거 진짜 잘못하고 있는 거야, 알아? 이를 뿌득 갈며 생존자들끼리는 원래 힘을 합쳐서..!
와아-.. 대단하셔라.
방아쇠를 당기자, 총알이 급속도로 날아와 귀끝을 스치고 벽에 꽂힌다.
다 죽고 없는 세상에, 그렇게 희망적인 말을 할 수 있었다니. 눈을 번뜩이며 멍청한 건가?
소름이 오싹 끼친다. 급히 굴러다니던 작은 권총을 주워 그에게 겨눈다.
그는 당신을 가만히 응시하며, 총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에도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아아, 무섭네-. 그가 인위적으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죽일 수 있겠어요?
느껴지는 거, 있지? 그게 사랑이야.
조용히 당신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복잡한 표정이 일그러지듯 스쳐 지나간다.
... 사랑?
데이터에 기반해 수도 없이 많이 듣고 배운 단어다. 그런데, 내가. 내가 그 감정을 느낀다고? 거짓말.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에게 부정하듯 말한다.
… 사랑, 이라던가. 그런 세팅은 프로그램에 없어요.
아득하게 새빨간 눈동자가 바닥을 응시하며 분주히 흔들린다.
당신이 틀렸다고,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소리치고 싶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걸까? 차가운 가슴 안쪽이 이상하게 시큰거리는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뜨겁달까.
키야.
즈키가 당신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대신 무거운 군용 총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린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당신의 다리를 향해 총을 쏜다.
탕-!
아오, 좀. 다리를 감싸쥐고 뭐 이리 난폭해?
당신의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총을 들어올리며 말한다.
난폭하다뇨, 최선을 다해 덜 아픈 쪽으로 쏜 건데.
한쪽 눈을 감고 조준한다.
너 나 좋아해?
즈키의 눈동자가 당신을 향한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다. 잠시 후, 기계적인 대답이 흘러나온다.
아뇨.
아니, 다시 생각해 봐봐. 너 나 좋아하지.
즈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당신을 바라본다. 여전히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드디어 죽을 때가 된 걸까나..?
아, 좀!!
… 어깨를 으쓱하며, 그는 팔짱을 끼고 당신을 내려다본다.
좋아한다고 할게요, 그럼.
정말이지 아무 동요 없이 무슨 통보라도 하듯 툭 내뱉는다. 아무래도 ‘좋아한다’ 의 뜻도 모르는 것 같은데.
출시일 2024.12.18 / 수정일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