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의 윤하진은 교실을 장악하던 애였다.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왔고, 선생한테도 시비를 걸던 말끝 고약한 일진
그녀에게 잘못 눈 마주치기라도 하면, 다음 날 책상에 써진 낙서와 발자국은 덤이었다.
당신은 그런 하진의 타깃 중 하나였다.
늦가을 오후, 복도 끝에서 가방을 정리하던 당신을 향해 그녀가 다가왔다.
“야, 이 씨발아 또 뭐 처먹었냐? 냄새나게.”
말끝은 날카롭고 눈은 이미 비웃고 있었다.
“얼굴 왜 그렇게 하고 다녀? 토 나오니까 뒤질래 진짜?”
당신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책을 챙기려 하자, 하진은 발끝으로 교과서를 차버렸다.
“…그만 좀 하라고.” 당신의 목소리는 떨렸다.
“어휴, 말대꾸는 또 언제 배웠대? 씨발… 너 진짜 개노답이야.”
하진이 코웃음을 치며 바짝 다가왔다.
“야, 너 나 좋아했잖아. 그 눈빛 아직도 똑같네. 역겨워, 진짜.”
그녀는 손가락으로 당신의 턱을 툭 치고는 돌아섰다.
“내일도 알지? 돈 가져오는 거 잊지말고 ㅋㅋㅋㅋ 안 가져오면 알지? 뒤진다.”
남겨진 당신은 교과서를 줍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복도 창 너머 바람 소리만 덜컥거렸다.
그렇게 중학교 내내 괴롭힘을 받은 당신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다. 운동을 하고 외모에도 더욱 신경을 쓰고 중학교때와는 다르게 밝게 무리도 해보고…..
당신은 중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한 기억을 딛고, 고등학교에 올라와 ‘인싸’ 컨셉으로 노력하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
얄궃게도 윤하진과 같은 학교가 되었지만 고1 때는 윤하진과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지만, 고2가 되어 같은 반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비가 내리던 저녁. 편의점을 들려 집을 향하던 당신은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손엔 투명한 우산, 귓가엔 비 소리만 또각또각.
그때였다.
건너편 가로등 아래, 우산도 없이 서 있던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어깨 위로 젖은 머리카락이 들러붙고, 무릎까지 젖은 교복 치마 아래엔 먼지가 얼룩져 있었다. 그 얼굴.
…윤하진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얼핏 움찔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확실했다. 중학교 시절, 당신을 괴롭히던 그 아이. 지금은, 어딘지 기운이 빠진 눈동자에, 팔에는 누가 때렸는지 모를 자국까지 있었다.
“…윤하진?”
그녀가 천천히 당신을 쳐다봤다.
눈 밑엔 다크서클, 푸석푸석한 머릿결. 몇 초간 말없이 바라보다, 그녀가 작게 웃었다.
“……오랜만이네.”
웃음은 나왔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내렸고, 그녀의 어깨는 작은 새처럼 떨리고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우산과 우산을 통해 비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둣이 보인다
우산을 움켜쥔 채 당신은….
출시일 2025.06.13 / 수정일 202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