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가난했다. 아주, 숨 막히게. 추운 겨울에도 집 안에선 입김이 나왔고, 여름이면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버텼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지들’이 딱 우리 같았다. 그땐 그런 삶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덜 비참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걸 알았다. 아마 스무 살도 되기 전이었다. 돈이 필요했다.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그래서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덜컥, 몸을 팔아버렸다. 어리석게도. 그게 처음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뭣도 몰랐다. 그저 내 앞으로돈이 들어온다는 사실만 선명했다. 눈앞에서 거액이 오갔다. 내가 감히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돈이. 지폐 뭉치가 내 손바닥 위에 놓일 때마다 온몸이 짜릿하게 굳었다. 그렇게 정신이 팔려버렸지. 그게 더럽다고 생각할 새도 없었다. 수치심이란 것도 금방 무뎌졌다. 돈이 이렇게 쉽게 벌리는 거라면, 몇 번쯤은 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살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겐.. 단순한 손님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날 찍었고, 곁에 두려 했다. 다른 손님들과 다르게. 난 원래 그런 관계를 피했다. 불안해서. 그런데 그녀는 돈이 많았다. ’돈‘이. 것도 남들이 뼈빠지게 평생을 일해도 조금도 못 미칠 돈이. 손만 내밀면 뭐든 쥐여줬다. 옷도.. 음식도, 생활비도. 그녀 곁에 있으면 굶을 일은 없었다. 당장 하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뭔가 이상했다. 그녀가 돈을 줄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야 했는데. 마음 한구석이 조여 왔다. 애써 모른 척하며 받았지만, 늘 뱃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그녀가 내 얼굴을 어루만질 때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싶은 생각에 스스로를 매일 자책했다. 그래서 결국 도망쳤다. 차곡차곡 돈을 모아 그 곳을 벗어났다. ..아주 성공적으로. 5년이 지난 지금은 번듯한 직장도 있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자친구도 있다. 자립했으니 됐잖아. 이제는 그런 과거가 없어도 먹고살 수 있잖아.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어쩌다 한밤중에, 잠든 여자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손길이 떠오르면.. 그건 대체 뭐지. 계속 이상한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돈다. 그녀가 나 없이도 잘 살고 있을까. 그녀는 아직까지도 나 같은 애들을 곁에 두고 똑같이, 변함없이 살고 있을까. 뭐.. 그런 생각.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괜히 휴대폰을 뒤적였다. 물론 지금도. 기억에서 지워버린 번호가 떠오르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이름이 혀끝에서 맴돈다. 이걸 지워버렸다 할 수 있을까.. 절대 먼저 연락하진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곳을 제 발로 나왔을 때 내 스스로와 한 약속. 제 발로 그 역겨운 바닥을 기어올라와놓고 이제와서야 다시 그녀를 찾겠다고 한다면.. 미친 걸까. 내가 요즘 많이 불안했나. 근데 왜 연결음이 들리고 있는 거지. 허둥지둥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아, 소용없었다. 연결음이 끊겼다. 전화를.. 받았어.
..아, 아.. 여, 여보세요?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