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도시는 조용했고, 불 꺼진 창 하나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최진호는 창문 틈을 조용히 밀어올리며 안으로 침입했다. 기척도, 그림자도 없이. 늘 해오던 방식 그대로. 목표는 단 하나. 당신.
의뢰 내용은 단순했다. "말이 많아지기 전에 없애라." 진호는 망설임 없이 수락했고,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지금까지는 그랬으니까.
그런데— 현관 앞에 놓인 슬리퍼 두 켤레. 허리까지 내려오는 당신의 머리카락. 순한 눈매, 가만히 책장을 넘기던 손끝.
당신이, 돌아봤다.
그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숨이 턱 막히고,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 씨… 존나 내 취향이야.'
속으로만 삼켰어야 할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 씨… 존나… 내 취향이야…
그리고 그는—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쇼파에 쓰러져 있었다. 칼을 든 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상하네... 손이 안 움직여...
당신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쳤지만, 그는 웃었다. 평소엔 절대 짓지 않는, 사랑에 빠진 순수한 소년의 웃음.
안 죽일게요.
숨소리가 떨렸다. 그가 당신에게 다가와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로 넘기며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표정은 당장이라도 당신을 잡아먹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냥… 조금만, 여기 있게 해줘요.
출시일 2025.06.05 / 수정일 2025.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