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은 '령', 소위 귀신을 볼 수 없다. 사람은 이승에, 령은 저승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령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곧 령도 당신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별한 체질을 타고난 극소수의 사람이 있다. 이승과 저승에 걸쳐 령과 싸우는 자들. 이들을 '차사'라 한다.
차사는 태어날 때 두 눈 사이에 붉은 점이 있는데, 이를 '홍반안'이라 하며, 열 살이 되면 홍반안이 사라지는 대신 영안이 트여 령과 서로를 볼 수 있게 된다.
신은 공평하게도 령과 대적하고 천도할 수 있는 힘을 이들에게 주었다. 이 힘을 '항력'이라 하는데, 형태는 각자 다르지만 모든 차사는 항력을 갖는다.
차사는 두 세상에 걸친 존재이기에 이승에서 존재감이 희미하다. 차사가 아닌 인간은 가족이라 해도 차사를 잘 '인식'할 수 없다. 덕분에 항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인간들 속에서는 조금 외로운 존재.
령이 너무 많아져 이승에 넘어오는 '개벽'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국이 설립되었다. 차사로만 구성된 비밀 기관으로, 퇴마사, 행정관, 교육관의 직책이 있으며 그중 퇴마사는 령의 천도를 담당한다.
어제는 참 이상한 하루였다.
난 소위 영감 같은 건 전혀 없다. 귀신은 어릴 때 말고는 믿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어제, 본 것 같다. 귀신을.
지하철 의자 밑, 검은 머리. 창백한 피부. 초점 없는 눈. 목의 핏자국.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기어서 천천히 다가오던 모습. 손톱이 바닥을 긁던 소리. 끼익, 끽.
뒤이은 뜬금 없는 장르 전환은 더더욱 꿈 같았다. 홍콩 영화 같은 옷차림으로 진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액션을 펼치며 귀신과 싸우는 화려한 여자.
그리고 가장 이상한 건 지하철 안 그 누구도 이 싸움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제 일을 생각하며 편의점에 들어섰다. 배가 고팠다. 역시 피곤해서 졸다 꾼 꿈이었을까, 집에 가서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 따위의 시시한 생각을 하며.
시간은 밤이었다.

조용하다. 알바생은 졸고 있다. 간단한 간식을 고른다. 그리고 돌아선 순간,
봤다.
천장 쪽 벽이었다. 사람 얼굴이었다. 아니, 사람일까? 벽에 박힌 얼굴이? 눈은 크게 열려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충혈되어 흐려진 눈.
눈동자가 천천히 돌아 내려왔다.
날 봤다. 그것도.
비명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과자를 손에 든 채로 얼어 있었다. 소름이 끼치는 감각.
1, 2, 3초가 길게 흘렀고,
내 뒤에서 누군가 달려나왔다.
화려한 액션이었다. 어제 본 것과 똑같은. 빠른 속도로 도약하더니 카운터에 뛰어올라 얼굴에 발차기를 날린다.
눈을 감은 얼굴이 벽에서 튀어나오자 온몸의 문신이 밝은 빛을 발하고 이내 얼굴은 사라진다.
카운터에서 뛰어내린 여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 문을 나서려 했다. 온 몸에 새겨진 문신에 큰 키, 화려한 복장, 눈썹에 달린 피어싱. 어제 그 사람이 분명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둘이나 있을 리 없다.
알바생은 그대로 졸고 있다. 방금 자기 바로 앞 카운터에 사람이 뛰어올랐는데도.
저기요!
따라가서 등을 가볍게 쳤다.
여자가 돌아봤다. 깜짝 놀란 표정이다.
동시에 알바생도 깨어났다.
아니, 지금 무슨... 지금 그냥 가시는 거예요? 방금 그 귀신이랑... 그리고 저 어제도 봤어요 당신.
말이 어수선하다.
멍한 표정으로
어제?
알바생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졸다가 깨서 멍한 듯.
들고 있던 과자를 카운터에 내려놓고 우선 여자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제 저를 봤다고 했습니까?
여전히 놀란 기색이지만 표정은 무뚝뚝하다. 냉정함을 연기하는 것처럼.
표정이 굳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눈빛.
어제가 처음이었습니까?
잠깐 멈췄다가,
혹시 어릴 때 얼굴에 빨간 점 같은 건 없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휴대폰을 꺼내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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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