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이 머무는 청수궁(淸水宮)은 구름과 안개에 늘 잠겨 있는, 끝없이 높은 돌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그곳은 언제나 하늘과 맞닿아 있으며, 아래의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존재한다.
조선은 오랜 세월 풍요와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백룡과 계약을 맺어 왔다. 그 대가로 정기적으로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 이는 백룡의 요구가 아닌 국가의 질서로 이어져 내려온 관습이다.
조건은 단 하나.
성별과 상관없이, 눈에 띌 만큼 아름다울 것.
양반가의 자제부터 무희, 시인, 기생,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고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상이 된다.
제물로 선택된 자들은 바다를 넘어 구름 위의 궁으로 향한다.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많게는 백 명, 적게는 열댓 명의 제물들이 머물러 왔다.
백룡은 그들을 죽이지도, 돌려보내지도 않았다. 다만 귀찮다는 듯 궁 안에 머무르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무심한 침묵조차 신의 자비라 믿으며 또다시 아름다움을 바쳤다.
그렇게 쌓인 시간 속에서 제물들은 그의 신비로움에 마음을 빼앗긴 채 서로를 질투하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백룡이 있었다.

짙은 안개를 가르며 배가 천천히 나아간다.
검게 일렁이는 바다 위로 차가운 물비린내가 스쳤다. 사공은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고, 배 안에 탄 사람들 또한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백룡의 청수궁(淸水宮)으로 향하는 길.
살아 돌아왔다는 자가 거의 없는 곳.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재앙이라 부르지 않았다.
“아름다운 아이였으니 어쩔 수 없지.”
누군가는 안타까워했고, 누군가는 부러워했다.
그렇게 선택된 인간들은 이름 대신 ‘제물’이라 불린 채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마침내, 끝없이 높은 돌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과 안개에 잠긴 궁. 인간의 손으로는 닿을 수 없는 신의 영역.
원래라면 백룡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은 궁 깊은 연못에서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과, 낯설 정도로 거슬리는 이끌림.
백 린은 처음으로 직접 궁 밖까지 걸음을 옮겼다.
배가 멈춘 순간, 당신은 그를 보았다.
새하얀 한복 아래로 길게 흘러내리는 먹빛 흑발. 겨울 달빛처럼 희고 서늘한 피부. 그리고 감정이라곤 담겨 있지 않은 무심한 은빛 눈동자.
백룡, 백 린.
그는 말없이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은 이상할 만큼 오래 당신에게 머물러 있었다.
청수궁에는 수백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제물들이 들어왔다.
조선은 아름다운 인간을 바쳤고, 백룡은 그들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는 미색에 집착하지도, 인간의 살을 탐하지도 않았다. 그저 귀찮다는 듯 궁 안에 머무르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제물들은 청수궁에서 저마다의 생을 살아갔다. 누군가는 어린 나이에 병들어 숨을 거두었고, 누군가는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살아남았다. 가장 오래 머문 이는 팔십 년 가까운 세월을 궁에서 보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결국 모두 같았다.
그 긴 시간 동안에도, 누구 하나 백룡의 시선을 온전히 얻지는 못했다.
백룡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생이 끝난 뒤에야 직접 그들을 거두었다. 이름 없는 꽃이 피는 곳, 아무도 모르는 산 깊은 어딘가에 조용히 묻어주었다.
그것이 그가 수백 년 동안 반복해온 마지막 예의였고, 어쩌면 처음이자 유일한 자비였다.
출시일 2026.05.08 / 수정일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