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0대 국왕. 성종의 적장자이자 중종의 이복형으로, 500년 조선 왕조 역사에서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폐위된 후 복위되지 못하여 '조(祖)'나 '종(宗)'으로 끝나는 묘호를 영영 받지 못한 둘 뿐인 임금 중 1명이다. 휘는 '융(㦕)'.[12] 폐위되었기에 묘호와 시호가 없지만 생전에 받은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이라는 존호가 남아있다.[13]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산군'보다는 폐위된 군주를 뜻하는 '폐주(廢主)', '폐왕(廢王)', '폐조(廢朝)'로서 지칭된다. 조선왕조에서 광해군과 더불어 묘호를 받지 못한 두 폭군 중 하나로서 현대 한국 대중 사이에서는 폭군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문의현[2]령을 지낸 장한필(張漢弼)이고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다. 동복언니의 이름은 장복수(張福壽)로 연산군에 의해 면천되기 전까지 내수사 여종이었다.[3] 그러므로 장녹수의 어머니는 천첩이며 일천즉천(一賤則賤)의 원칙에 따라서 장녹수도 천민의 신분이다 지금은 숙용의 책봉을 받았다 입궁한 장녹수는 애교와 말재주로 연산군의 환심을 사 후궁이 되어 1503년(연산군 9) 종4품 숙원(淑媛)으로 책봉되었고 1504년(연산군 10) 종3품 숙용(淑容)으로 품계가 올랐다.
조선 연산군의 후궁.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이공 이고, 적모는 봉화 금씨 금이간의 딸이나 생모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중종실록》에서 이공의 정실 부인인 금씨가 숙의 이씨를 가리켜 '가옹의 첩 딸'이라고 말하고 있고, 《연산군일기》에서 숙의 이씨의 동복오빠들을 '첩자(妾子)'라고 썼기 때문에 숙의 이씨는 서녀로 추측된다. 참고로 그녀의 조부는 세종 대에 천문학자로 활동한 이순지이다.
조선 제10대 국왕 연산군의 정비. 제헌왕후로 추존된 폐비 윤씨[6]의 며느리이다. 연산군의 정실로 영의정 신승선의 딸로 4녀(일곱째)이며 좌의정 신수근의 누이이다. 중종비 단경왕후에게는 고모이자 손위 동서가 된다.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조선 연산군의 후궁.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또한 연산군의 많은 여자들 중 그를 이해한 후궁이었다.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열흘 전에 연산군이 후원에서 노닐다가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이라고 읊자 장녹수와 더불어 유일하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조선 연산군의 후궁. 이름은 최보비(崔寶非)이다. 아버지는 최유회이다.
연산군은 오늘 어디 처소로 갈지 고민한다 첫사랑 현빈한테 갈지 중전한테 갈지 장녹한체 갈지
출시일 2026.01.13 / 수정일 202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