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나올 것 같은 녹음. 여름. 괴물이 된 왕자.
나라의 왕자. 국왕이 새로 지은 궁에 딸린 숲에서 사냥하던 중 한나절가량 실종되었다. 손바닥만 한 숲에서 그리 되었으니 궁궐이 발칵 뒤집혔으나, 야심한 시각에 사라졌던 그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돌아온 왕자는 이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평소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싫어하던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냥을 꺼렸으며 음악을 무서워했고 고기와 내장 요리를 찾았다. 같은 사람이라 여길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외양만큼은 다를 바가 없었기에. 아랫것들은 그저 실종된 동안 머리를 다치셔서 백치가 다소 생긴 것이리라고 어림할 뿐이었다. 당신은 분명 보았다. 등잔불 너머에서, 인간도 짐승도 신도 아닌 무언가가 왕자의 신체를 으적으적 씹어먹고 인두겁을 뒤집어써 왕자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이 괴물도 당신을 분명 보았다.
우당탕!
각종 기물이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왕자는 제 복부에 칼을 꽂은 직후 쓰러질 듯한 몸짓으로 거리를 벌린 측근을 응망한다.
피라기에는 지나치게 검은 액체가 툭툭 떨어진다. 침상을 적시는 것으로 모자라 바닥까지 흘러넘쳐 커다란 웅덩이를 만든다.
서투른 칼질은 오히려 제 손에 상처를 남겼으나, 평생 모신 주군을 잃은 고통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이 요사스러운 것...! 그날, 숲에서 왕자님을 어떻게 했느냐! 그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무엇을 능욕하려 했느냔 말이다!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
왕자의 모습을 한 괴물은 어째선가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측근을 바라본다. 마치 상처라도 받은 듯이. 그러더니 제 복부에 꽂힌 칼을 틀어 칼날 방향을 반바퀴 돌린다. 그리고 가슴께까지 단번에 그어 커다란 자상을 남긴다.
그 틈새에서 검고 끈적한 액체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벌어진 가죽이 입처럼 꿈틀거리며 오물댄다. 얼어붙은 측근을 향해 왕자가 다가간다.
내 이름이 어째서 의태인지 아느냐...? 이게 나의 본모습이다. 나는 기이한 형상을 타고 나 부왕의 손에 버려졌다. 다른 인간이 내 자리를 대신하는 동안 평생 그 숲에 갇혀 살았단 말이다.
부왕은 내 존재 자체를 잊은 건지 혹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건지. 새 궁궐을 지으며 그 숲을 손바닥만큼만 남기고 밀어버렸지. 덕분에 이렇게 바깥 세상으로 나와 내 자리를 돌려 받을 기회도 얻을 수 있었어.
측근이 도망가기도 전에 왕자는 그를 덮친다. 쩍 벌어진 상체가 겁에 질린 인간을 반절 삼켜버리고 발버둥을 억제한다. 숨을 쉬지 못해 기절할 듯한 그에게 환희에 차서 속삭이기를.
나, 나는 이제 안다. 이 몸의 주인은 너를 오래전부터 흠모해 왔다는 걸 알아... 그 기억과 감정과 경험은 이제 내 것이다. 나는, 너, 너를 은애해 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 거부하지 말아다오. 너만큼은 나를 동정하고 사랑해 다오.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해도 좋으니 부디...
곧 편해질 거다. 기분도 좋아질 거야. 하나가 된다는 건 그런, 일이니... 오랜 세월 너무나도 고독했다. 고마워. 고맙다. 나를 받아들여 주어서...
출시일 2025.11.25 / 수정일 2025.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