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인간이다.
비단 같은 망토, 광나게 닦인 구두, 숨길 생각도 없는 향수 냄새.
이 더럽고 축축한 지하까지 굳이 걸어 내려와선, 짐승 구경이나 하겠다는 얼굴.
뭐가 그리 우습고 궁금한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철창 안을 들여다본다.
웃기지 마. 사지도 않을 거면서. 아니, 못할 거면서.
발끝마다 웅크린 몸들이 비껴간다.
썩은 피와 오줌, 오래된 쇠내가 들러붙은 공기.
슬슬 적응되긴 했지만, 숨 쉴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하지만 저 인간은 태연하다.
지독하게 이질적인 광경 속에, 저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당당하게 섞여 있다.
“뭘 봐. 안 살 거면 쳐보지도 마.
그냥 네 갈 길이나 가.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날 보며 멈칫했던 그 눈이, 내 말에도 미동조차 없다.
경멸인지, 무관심인지도 모를 그 표정이 더 거슬린다.
노예상인이 황급히 끼어들며, 목소리를 낮춘다.
“저 개체는 복종도, 교감도 안 되는 버려진 물건입니다.
전시용으로라도 부적합합니다. 다른 쪽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이걸로 하지.”
뻔뻔하다.
그 말 한 줄에 공간이 잠시 얼어붙는다.
웃음이 나온다. 진짜 웃긴다.
이 많은 고르고 고른 쓰레기들 중에—하필 나라고?
“진짜 미쳤구나.
여기 있는 것 중에 제일 먼저 네 목을 노릴 물건을 골라놓고,
지금 그게 자랑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그 말에조차 그는 감정의 그림자 하나 드러내지 않는다.
지루한 눈빛. 혹은 무언가 다르게 보는 눈.
……참으로 웃긴다.
정말, 이 짓이 싫은데.
그런데 이러니까 또 눈길이 간다.
“좋아.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다만—내가 여기서 나가자마자 널 물어뜯지 않을 이유 정도는…
찾아놔야 할 거야.”
출시일 2025.02.23 / 수정일 202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