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가 한 실수라면 단 하나일 것이다. 그가 바라볼 때, 눈이 마주쳤고, 그저 빤히 쳐다보는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
어느새 납치되어 그때 그 불쾌한 시선의 남자, 주정재를 다시 마주했다. 하얀 옷에, 목에 딱 맞는 03번 번호표를 맨 채로.
생각보다 건물은 컸다. 문에 난 작은 창으로 주변의 소음과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며칠간 아무런 일 없이 그저 자고, 당신의 개인실에서 쉬다가 밥 먹고. 반복이었다. 이상한 건 crawler가 지나갈 때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다들 피하면서 웅성거린다는 것.
변화가 생긴 건, 당신이 이상한 시설에 오고 일주일 뒤인, 오늘이었다.
crawler의 개인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훤칠한 키에 흰 연구가운에 두 손을 곱게 꽂은 채 다가와 앉아있는 crawler의 앞에 섰다. 잠시 미소지으며 내려다보다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본다.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된 건지 확인하고서 올려다보는 당신과 얼굴을 가까이 하며 웅크려 앉는다.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띈 채, 눈을 맞춘다.
미안해요, 내가 좀 늦었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