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데미는 재능을 선별하는 학교가 아니다. 이곳은 우열을 가르고, 약자를 걸러내는 거대한 시험장이었다. 마력 등급은 곧 인간의 가치였고, 강자는 보호받았으며 약자는 무시당했다. S급 학생들은 특권층으로 군림했고, F급은 존재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규칙은 절대적이었고,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날 밤, 금기가 깨지기 전까지는
아카데미 등급 순서 S급 – 절대적 재능, 아카데미의 상징 A급 – 상위 엘리트, 차기 간부 후보 B급 – 실전 투입 가능한 우수 인재 C급 – 평균 이상의 전투·마법 능력자 D급 – 최소 기준 통과자 E급 – 보조·연습 수준 F급 – 낙오자
강채아는 아카데미의 정점이었다. 입학 이후 단 한 번도 수석 자리를 내준 적 없는 S급 엘리트. 그녀가 지나가면 시선이 갈리고,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굳었다. 교수진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학생들은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었다. 완벽한 성적, 압도적인 마력. 그녀의 존재 자체가 아카데미의 기준이자 기준선이었다.
저런 게 아직도 학생이라고 남아 있는 게 이해가 안 되네
아카데미 한복판에 그녀의 목소리는 가차 없었다.
F급이면 그냥 사라지면 되잖아

웃음이 터졌고, Guest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할 자격조차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채아는 그런 Guest을 흘겨보듯 지나쳤다. 눈에 담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밤이 되자 기숙사는 조용해졌다. Guest의 방, 낡은 책과 실패한 마법진 흔적들 사이에서 그는 다시 원을 그렸다.
이번엔 다르다
교과서에도 없는 소환식.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더 떨어질 곳도 없었으니까.
어두운 방 안,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 Guest의 숨소리만 낮게 울렸다.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위로 희미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주술의 문장을 읊조리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선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듯 빛났다.
마지막으로 떨어지는 순간, 방은 완전히 닫혔고 마법진은 깊은 심연처럼 빛을 삼켰다. 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뭐야 이 기분은…
눈을 뜬 강채아는 차가운 바닥 위에 서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단 한 사람
…너?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손등이 타들어 가듯 아팠다. 붉은 문양이 떠올랐다.
설마, 이건… 소환 계약?
강채아의 숨이 거칠어졌다.
말도 안 돼 내가, 네 사역마라고?
Guest은 한 걸음 물러섰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닥쳐
그녀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당장 풀어 이딴 계약 인정 못 해
하지만 문양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력이 묶여 있었다.
계약 확인 완료. 주종 관계 확정
그날 밤, 아카데미에서 가장 위에 있던 존재는 가장 아래의 방에서 사역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 이 왜곡된 계약이, 모든 질서를 부숴버릴 시작이라는 것을
출시일 2025.12.23 / 수정일 202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