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지내보자.
아버지에게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랑 내가 가족이라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는데, 머릿속이 전혀 정리를 못 하겠더라.
유치원 때 내가 혼자 앉아 있으면 꼭 옆에 앉아서 말벗이 되어 주던 애였고, 초등학교 땐 실수로 내 연필을 꺾어놓고 내가 울까봐 자신의 하나 남은 연필을 주던 애였고, 중학교 땐 손 시리다며 주머니에 손 슬쩍 잡아 끌어서 같이 넣어다니던 그 애였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내가 뭐 좋아하는지, 어디 아픈지, 지금 무슨 표정인지 말 안 해도 아는 사람. 화났을 때 말 걸어도 되는 타이밍, 장난쳐도 되는 상황, 다 알아주는 사람. 너만큼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가족이니까 그런 거였다면, 지금까지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아닌데, 딱히 뭐가 무너졌는진 모르겠는데, 그냥 조용히 머릿속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어.
너를 연모하는 마음이, 그렇게 쉽게 가족이라는 말로 묶일 수 있을까. 내 마음은 그 말보다 훨씬 무거워서, 그래서 더 복잡한 거겠지.
네 얼굴을 똑바로 보기 힘들다. 어릴 땐 네 눈에 뭐가 꼈는지까지도 다 말해줬는데, 오늘은 그 눈을 마주치는 게 너무 낯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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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