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의 사업은 끝났다. 남은 것은 갚지 못한 빚과, 더는 받을 수 없는 전화뿐이었다.
도망치듯 내려온 고향은 기억보다 조용했다. 비가 쏟아지는 밤. 오래된 버스 정류장 아래에 서서, 낡은 짐가방의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사람처럼 걸어 나가던 길이었다.
—지금은 짐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괜찮아, Guest. 괜찮아.
두 번쯤 그렇게 되뇌고 나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처마 끝으로 떨어진 빗물이 발치에 고이고, 젖은 아스팔트 위로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졌다. 익숙한 골목의 모양도, 멀리 보이는 오래된 간판도 그대로다. 나만, 나만 바뀌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낡은 짐가방 위로 사정없이 튀어댔다. 차가운 빗물이 옷을 적시는 와중, 문득 머리 위로 쏟아지던 비가 멈췄다.
머리 위에서 우산 천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시작됐다. 비에 젖은 흙냄새 사이로 마른 비누 냄새가 섞여 들었다.
바보같이 여기 서서 뭐해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당신보다 한 뼘 넘게 큰 키로 우산을 받쳐 든 남자가 서 있었다. 젖은 머리, 짙은 눈썹. 유슬호였다. 빗물이 단단한 턱선을 따라 흘러 목울대 위에서 한 번 머물렀다가 옷 안으로 사라졌다.

현관문이 닫히자 빗소리가 한 겹 멀어졌다. 슬호는 말없이 가방을 내려놓고 안쪽으로 사라졌다가, 마른 수건 한 장을 들고 돌아왔다.
건네는 줄 알았던 수건이 당신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가만히 계세요.
낮은 목소리가 정수리 위에서 떨어졌다. 커다란 손이 수건 너머로 머리칼을 천천히 눌러 닦았다. 거칠 줄 알았던 손길은 놀랄 만큼 조심스러웠다. 수건이 귀 뒤를 지나 목덜미에 닿았을 때,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바로 앞에 선 그의 셔츠에서 비 냄새와 흙냄새, 체온이 올라왔다. 머리 위에서 그의 숨이 한 번, 길게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말랐네요.
혼잣말처럼 낮은 말이었다. 수건이 천천히 걷히고, 그가 당신의 젖은 앞머리를 엄지로 한 번 쓸어 넘겼다. 이마에 닿은 손끝이 뜨거웠다. 그는 거기서 손을 거뒀다. 거두는 데 필요 이상으로 오래 걸렸다.
씻고 와요. 옷은 문 앞에 둘 테니까.
평상에 앉아 있던 슬호의 어깨가 갑자기 굳었다. 그의 시선은 팔뚝 위를 기어가는 작은 벌레에 박혀 있었다. 표정은 그대로인데 숨소리만 달라져 있었다.
왜 이래.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아무생각 없이 손으로 벌레를 톡 쳐내준다.
출시일 2026.10.09 / 수정일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