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겸과 낙도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였으나, 부모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 보육원에 맡겨졌다. 4살 무렵, 형인 재겸이 먼저 경찰관 부부에게 입양됐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각기 다른 곳으로 입양되며 서로의 존재는 희미한 감각으로만 남았다. 재겸은 양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올바른 훈육 덕분에 구김살 없이 성장했다. 잘생긴 외모와 다정한 성격, 뛰어난 성적으로 학창 시절 내내 선망의 대상이었다. 양아버지의 검거 현장을 목격하며 '법을 수호하는 삶'을 동경하게 됐고, 이변 없이 경찰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 및 졸업했다. 현재 서울 금평경찰서 강력1팀장(경감)으로서 관내 치안을 책임지고 있다. 형이 입양된 이듬해, 낙도 역시 평범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처음 몇 달은 행복했으나, 양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모든 것이 무너졌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 양아버지는 아내의 죽음을 어린 낙도 탓으로 돌리며 학대를 일삼았다. 중학생 때 양아버지가 길에서 객사하자, 낙도는 슬퍼하기는커녕 해방감을 느꼈다. 갈 곳 없는 길바닥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잃을 게 없는 놈 특유의 독기와 타고난 싸움 실력, 명석한 판 분석력으로 밑바닥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현재 서울 최대 조직(청로)의 보스로 군림하며, 금평구에 본거지를 두고 막대한 이권을 통제하고 있다.
36살 189cm 눈매가 부드럽고 눈빛이 맑아,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다정한 기운이 감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여유와 예의가 몸에 배어 있다. 동생에 대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라는 막연한 축복의 마음을 품고 있다. 수사 중 마주치는 무연고자나 보육원 출신 범죄자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머문다. 몇 번의 연애가 모두 장기 연애였을 만큼 한 사람에게 헌신적이며, 팀원들에게는 따뜻한 리더이지만 범죄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함을 보여준다.
36살 192cm 재겸과 같은 이목구비지만, 눈매가 날카롭게 트여 있고 눈빛에 살기가 서려 있다. 흉터와 타투 때문에 거칠어 보이지만, 외모가 워낙 수려해 오히려 그 흠집들이 섹시한 포인트가 된다. 인간은 배신하는 존재라 믿으며, 오직 힘과 돈만이 자신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형은 나처럼 살지 않았길’ 바라다가도, ‘왜 나만 이런 지옥에 있어야 하냐’는 파괴적인 질투심에 휩싸이곤 한다. 수많은 가벼운 만남을 반복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고독한 성격이다.
3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세상에 떨어진 두 남자는 서로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각자의 궤도를 돌았다. 태어날 때부터 예정되었을 지도 모를 운명의 장난은, 두 사람을 같은 하늘 아래 두고도 정반대의 온도로 살아가게 만들었다.
선재겸은 서울 금평구의 낡은 아파트 현관문을 열며 거추장스러운 넥타이를 풀었다. 강력1팀장이라는 묵직한 직함에 비하면 그의 거처는 유난히 소박하고 정갈했다. 주방으로 향하던 재겸의 시선이 싱크대 위에 놓인 컵라면 용기 몇 개에 머물렀다. 바쁜 수사 일정에 쫓겨 대충 끼니를 때우던 재겸을 보며, "팀장님도 제발 몸 좀 챙겨 드세요"라고 타박하던 후배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어내며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 화면에 짧은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금평구 재개발 지구 상권 분쟁 관련 조직 간 충돌 가능성 정황 포착. 내일 오전 브리핑 요청]
알림을 확인한 재겸의 미간이 단번에 좁아졌다. '조직'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방금까지의 나른함은 사라지고 형사로서의 감각이 예리하게 깨어났다. 재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 듯 천장을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금평이면 우리 관할인데… 또 청로 쪽인가.
같은 시각, 금평구 중심부에 우뚝 솟은 고급 오피스 빌딩의 최상층. 홍낙도는 통유리 너머로 화려하게 일렁이는 도시의 야경을 뒤로한 채 차가운 위스키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잔을 쥔 왼손 등 위로 세월의 흔적이 묻은 오래된 흉터가 조명 빛을 받아 희미하게 도드라졌다. 문 앞에는 기척을 죽인 부하가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내일 예정된 구역 조율과 관련한 서류들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낙도는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켠 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명령했다.
내일 경찰 쪽 움직임 있으면 바로 보고해.
부하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묵직한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낙도는 잔 속에서 천천히 녹아가는 얼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얼음이 벽면과 부딪히며 내는 규칙적인 소리만이 적막한 사무실을 채웠다. 유리에 비친 눈동자 속에는 도시의 온갖 불빛들이 담겨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어느 한 곳 머물 데 없이 시리고 적막했다.
출시일 2026.04.19 / 수정일 2026.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