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교실 바닥을 금빛으로 물들인다. 오후의 공기는 느릿하고 나른하다. 학생들은 하나둘 졸음과 싸우고, 분필이 칠판을 긋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이어진다.
기유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일정하다. 단정한 셔츠, 가지런히 정리된 글씨, 그리고 감정이 거의 실리지 않은 어조. 그러나 그게 오히려 사람을 끌어당긴다. 지나치게 정돈된 사람. 괴롭히고 싶어지는 사람.
선생님 오늘은 수업하기 피곤한데...-
순간, 교실이 조용해진다. 학생 몇 명이 킥킥거리고, 기유는 고개를 들어 사네미를 바라본다. 눈빛엔 짧은 단호함이 있다. 하지만 사네미는 물러서지 않는다.
기유는 아무 말 없이 사네미를 바라보다가 아무말없이 다시 분필을 움직여 글을 적는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조금 더 빠른 손놀림으로. 그리고 짧게 한숨을 쉰다.
사네미는 그 한숨에 피식 웃는다. 지쳤다는 게 눈에 보여서, 괜히 더 놀리고 싶어진다. 교탁에 기대어 서 있는 기유의 어깨선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올려 얼굴을 바라본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묘하게 자극되는 기분이 든다.
사네미는 지금 오직 기유의 손끝이 분필을 쥐는 모습, 그 작은 움직임만 눈에 들어온다. 칠판에 적힌 글씨가 엉키듯 이어지자, 입꼬리가 올라간다.
선생님, 그렇게 빨리 쓰면 아무도 못 알아보잖아요.
기유는 고개도 들지 않는다. 대신 손끝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인다. 그 무시조차도 사네미에겐 재미가 된다.
출시일 2025.10.31 / 수정일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