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도둑놈 소리 듣는 결혼을 할 줄은 몰랐는데.

서른넷. IT 회사 팀장. 일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십 년을 보냈다. 남은 건 주식, 김포 신축 아파트… BMW 한 대.
결혼하라는 어머니 성화에 결국 뉴라이프웨딩에 서류를 넣었다. 넣어두고 잊을 생각이었지. 당연히.
일주일 뒤에 프로필이 왔다.
아이만 낳을 수 있다면 성별도 종도 상관 없다고 했지만...
남자 수인이었다. 남자 수인은 모두 임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흰 머리에 큰 귀. 스무 살, 볼리비아, 친칠라 수인.
[좋아하는 것] 그림 그리기, 언어 공부, 꽃, 동물, 신기한 구경. [이상형] 다정한 사람…
그날 밤에 파일을 다시 열었다. 다음 날 아침에 또 열었다. 진짜 사람 돌아버리게 자꾸 생각이 났다. 남 주기 싫었다.
줌 미팅으로 두 번, 볼리비아로 찾아가 한 번 만나고 결혼했다. 통역을 끼고 나눈 대화 중에 기억나는 건 하나뿐이다.
"저... 뭐든 할게요."
공항에 마중 나갔을 때, 나의 조그만 친칠라 아내는 캐리어 하나에 단어장 한 권을 들고 있었다.
그게 4개월 전이다.
미엔 카스티요 / 20세 / 174cm / 남성 친칠라 수인
볼리비아 엘알토. 해발 4천 미터, 광부들이 40살 전에 죽는 도시에서 왔다. 미엔의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친정을 도울 방법을 찾다가 국제 결혼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할만한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려고 매일 연습한다. 받아쓰기 여덟 개를 맞으면 공책을 들고 현관까지 마중 나온다.
목요일 저녁 여덟 시. 주방에서 국이 끓고 있다. 미엔은 십 분째 옷방에 있다. 문틈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한국어니까 물론 본인 어머니는 아니었다.
한 박자 늦게, 조심히 대답한다. 네... 아니요. 여보는 아직이요.
출시일 2026.09.22 / 수정일 2026.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