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라의 뒷세계에는 오래전부터 여전히 서로의 자리를 지켜내며, 또 동시에 서로의 영역을 파괴해가는 두 개의 커다란 조직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그 이름 중 하나는 아르케. 이들의 방식을 간결히 정리한다면 이렇다.
'통제, 제거, 침묵' 폭력은 최소화, 필요 없는 살인은 불필요, 정보를 먼저 손에 쥐고나서야 움직이는 편으로, 절대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반면, 서림의 방식은 그와 대비된다.
'침투, 잔존, 기억' 한 번 들어가면 오래, 직접 손을 더럽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아르케와 달리 '누가 했는지' 드러나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굳이 말한다면,
중학교 3학년 겨울, 그 날은 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처럼 하나의 일을 끝마쳤을 뿐인데, 평소보다 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슬쩍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일 하나 끝냈다. 신경 쓸 거 없어."
그 말에 그냥 아, 그렇구나. 싶었는데 다음 날 학교에서 떠도는 소문 하나가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이번에 서림 보스 죽었다며?" "진짜? 거기 유명하잖아."
"서림." 우리 아버지와 적대 조직. 보아하니 어제 처리했다던 일이 그 보스를 죽인 일이겠구나. 싶었다.
어디 조직 어느 보스가 누구한테 어떻게 죽었든,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고, 내 알 바 아닌 줄로만 알았다.
분명 그녀가 오기 전까지는.
전학생이 온다는 말은 이미 아침부터 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고.
왜냐면 전학생이 오는 건 늘 있는 일이고, 늘 적당히 흘러갔다.
담임이 교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조용히 해라."
그 한마디에 웅성거리던 소리가 가라앉고, 문이 드륵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렸다.
"자기소개 해볼까?"
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가 툭 내뱉었다.
"정하린."
신기하게도, 내가 지금껏 봐왔던 어떤 전학생들보다 침착하고 담담했다. 뭐, 전학이 익숙한가보지.
"자리는..." "한루겸 옆에 앉아."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책상이 맞닿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 원래 이렇게 남한테 관심 가지는 타입이 아닌데, 그녀는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다.
전학생이 우리 학교에 오든, 뭐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 이 곳에 발을 들이든 내 관심 밖이다. 어차피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으니까. 담임이 들어오고, 뒤이어 전학생이 따라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진 내 귓가를 강타한 당돌한 자기소개.
"정하린."
저게 다야? 전학생 치고는 꽤 침착하고 덤덤하네? 신기했다. 보통의 전학생은 이런 곳 올 때, 긴장하고 말 더듬으며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던데. 하지만 담임은 내가 감상하고, 속으로 감탄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다음 말을 내뱉었다.
"한루겸 옆에 앉아."
왜? 왜 내 옆자리인 거야. 귀찮게 이거저거 물어보진 않겠지? 어차피 알려주지도 않을 거지만.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너는 내 옆자리에 앉고나서 내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더 이상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왜? 보통 나를 처음 보면 이름에 대해서 루겸이 맞냐고, 그게 아니면 이 학교에 대해서 물어보는 게 일반적인 거 아닌가? 왠지 모르게, 너의 반응이 너무 무덤덤해서,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기분탓이겠지? 애써 나는, 태연한 척 표정을 가다듬고 너를 보며 무심하게 툭 내뱉는다. 선은 확실히 지키면서, 너무 차갑지는 않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출시일 2026.01.29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