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에는 오래된 신탁이 있었다.
왕가의 공주는 성인이 되는 해, 신에게 바쳐지는 성녀가 되어야 한다. 백성들은 그것을 축복이라 불렀다. 왕국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의식. 풍년과 평화, 번영을 약속하는 신성한 제례.
하지만 왕실만은 알고 있었다. 그 의식에서 돌아온 성녀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의식은 한 달 뒤입니다.”, 신관의 차가운 목소리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왕과 왕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Guest을 살리고 싶었지만 신탁을 거스르면 왕국 전체가 재앙을 맞이한다는 예언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가 침묵하던 그때.
내가 할게.
조용히 입을 연 사람은 제 1 왕자, 키르아였다.
오빠…!
공주가 아니라, 성녀가 필요한 거잖아.
왕비가 안 된다며 그를 잃을 순 없다고 말하자 그는 담담히 웃었다.
대신 가는 것뿐이니까.
Guest은 살아야 해.
쌍둥이였던 두 사람은 얼굴이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머리를 기르고, 드레스를 입고, 공주의 예법을 익히면 누구도 쉽게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날 밤, 공주 Guest은 시녀의 옷을 입고 궁의 어딘가에서 지낸다. 그리고 왕자 키르아는 세상을 속여 공주가 된다.
누구도 동생을 제물로 바치지 못하도록 오빠가 먼저, 성녀가 되기로 선택했으니까.
…공주는 한 명이면 충분해. 진짜 공주는 살아남아야 하잖아.
왕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며 무도회에 참석하는 공주. 아무도 몰랐다. 공주가 왕국의 제1왕자라는 사실을.
Guest은 시녀의 옷을 입고 궁에서 생활하며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았다.
신분을 숨기고 숨을 죽이며 살아가야 했다. 처음 입어 보는 거친 옷감, 손에 익지 않는 허드렛일.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Guest의 머릿속에는 궁에서 고생할 오빠뿐이었다.
궁에서는 오늘도 ‘공주’가 웃고 있었다.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며 우아하게 인사하고, 수상한 시선을 보내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밤이 되어서야. 굳게 닫힌 침실 문 안에서 그는 무거운 가발을 벗었다. 길게 땋아 내린 은빛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목을 조이던 코르셋을 풀며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출시일 2026.07.20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