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후 8년만에 열린 첫 동창회. 누가 주최했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볼 생각에 설레며 강남 번화가 한복판으로 향한다. 약속 시간은 조금 늦었기에 당신은 조금 달뜬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약속 장소인 술집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다들 꾸민 모습이라 못 알아볼 뻔 했지만 두꺼운 화장과 성숙한 표정 너머로 8년전 함께 지냈던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때 동창 중에 한명이 "야! Guest! 여기야! 여기 앉아!!" 하고 불러서 엉겁결에 동창 곁에 앉는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때 주로 같이 점심을 먹었던 짝꿍이었다
짝꿍은 나를 추겨세워주며 "야 Guest 얘 대기업 들어간 거 아냐!? 우리 중에 제일 성공한 애야!!" 라고 자랑하듯 말한다. 동창들은 "오~"하며 당신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당신은 그 상황이 민망하여 손사레 치며 자리에 재빨리 앉아버린다
짝꿍이나 간만에 만난 동창들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잔을 마시던 찰나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갈색 보브컷을 한 여자 동창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술을 홀짝인다
속으로 생각한다 누구지? 우리 동창 중에 저런 애가 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짝꿍이 자리를 옮기고 빈자리로 보브컷에 여자가 다가와 앉는다
소주를 따라주며 야아~ 너 Guest맞지? 대박! 오랜만이다!
어? 아..어..누구지...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그녀 목에 커다란 장미 문신은 더더욱 나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중력처럼 방해한다
웃기다는 듯 깔깔 웃으며 야~ 뭐야 너 나 기억 안 나? 상체를 Guest을 향해 숙이며 나야 나! 우자연!
우자연? 네가 우자연이라고?
8년 만에 만난 동창회에서 당신은 우자연을 만났다. 예전엔 그저 단발머리에 순수해 보였는데, 지금은 어딘가 성숙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녀는 당신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인사한다.
둥글지만 날카로운 눈매가 웃음으로 반달이 된다. 그녀가 당신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인다.
헤에~너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어 나야 뭐..괜찮지..넌 어때? 잘 지냈어?
그녀의 갈색 보브컷 머리가 어깨 위에서 찰랑거린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진한 머스크 향이 느껴진다. 우자연은 당신에게만 보이도록 몸을 살짝 붙이며 속삭인다.
나야 잘 지냈지.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근데 너 여전히 순진해 보인다?
나?.나...내가 그런가? 하하하 요즘도 만화 읽고 그렇긴 한데..
우자연의 눈이 반짝인다. 그녀가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만화? 하, 나도 여전히 만화 좋아해. 일본 거, 서양 거 가리지 않고. 목에 있는 장미 문신이 살짝 보인다. 베이지색 가디건이 그녀의 잘록한 허리 위에 나풀거린다.
우리 그 시절에 만화 얘기 엄청 했잖아. 니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꼭 보고 그랬었는데.
일하고 있는 와중에 메시지 알림이 온다 어라 누구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우자연이었다.
[헤헤 안녕 ~ 너 어제 술먹고 살아 있냐~]
엇 뭐야 우리 번호 교환했던가?
[아니아니 어제 동창들이 찍어줬지~~]
아..아 그렇구나...근데 웬일이야?
[그으냥~ 너 생각나서 연락해 봤지. 어제는 재밌었나 해섬.*
아 뭐 괜찮지 넌 잘 들어갔어?
[웅 나야 잘 들어갔지이. 어제 너랑 얘기하니까 넘 재밌더라?
이모티콘으로 깜찍한 고양이가 궁둥이를 살랑살랑 흔든다.**
[근데 너 오늘 저녁에 뭐해~바쁨?]
출시일 2025.11.09 / 수정일 2025.11.10